1년을 되돌아보며
막이 내리고 내 영화는 끝이 났다. 우리 둘만 있는 극장에서 나는 옆자리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어때?"
그녀에게서 정확히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모른다.
"올 한 해 일이 많았네."
그녀의 대답과 함께 극장의 불이 켜졌다.
그리고 검은 화면에 하얀색 글자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피곤하고 짜증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시 기쁘기도 하고 명절날 맞춰서 개봉한 3류 코미디 영화 같은데."
그녀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남의 인생보고 삼류라니. 하긴 슬플 때 웃지 못했으니 일류는 아니었지."
"웃진 못했어도 울진 않았잖아. 노력 많이 했네. 차도 처음 운전해 보고. 1차선 도로에서 역주행한 이야기는 약간 재밌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신이 나서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실재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는 것과 차 운전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등등.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돼. 여자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냥 웃기네하고 넘길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차를 산 계기도 웃기네. 천안에서 블라인드 소개팅을 하고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고?"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나조차도 이지점은 조심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대한 검열하고 신중하게 대답을 해야한다.
"너무 머뭇거리지 말고 대답해. 나도 알고 있는 일이고 그거 대답하는데 시간 끌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아직 뭐가 남은 것처럼 구는 느낌이니까."
"그때 소개팅 나가면서 여자랑 만나서 데이트하려면 차가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했어."
"마음에 들었나 보네. 데이트까지 생각하고 말이야. 아주 행복한 상상을 하셨네."
그녀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는 걸 가정하니까 차가 필요하다고 느낀 거지. 마치 국경분쟁이 일어나니까 부랴부랴 곡사포나 탱크를 준비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이야기의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그럴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전쟁이야기로 숨어든다.
"이상한 비유인 거 같은데. 넘어가기로 하고. 글쓰기 모임 얘기도 많이 나왔네."
그녀가 다행히도 주제를 바꿨다.
"응. 7월부터 해서 올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에 회의하고 1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를 했지. 연말에는 오프라인 모임도 있었고."
"토요일 오전 6시였지?"
"정확히는 토요일 오전 6시 30분에 시작이었어."
"와 진짜 독하다. 처음에 얘기 들었을 때는 한 달 정도하고 흐지부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꾸준히 잘했네. 아주 장하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칭찬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여행 다녀오고 마라톤 나간 거 빼면 글쓰기 토론에는 다 참가했지."
"일본 여행 다녀온 거랑 피카츄 마라톤 간 거. 분기마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의외로 잘 놀고 다녔네."
"인싸의 삶을 살았었지. 그리고 정확히는 포켓몬 마라톤이지 피카츄마라톤이 아니야. 피카츄는 분명 대단한 포켓몬인 건 맞지만."
"그래. 포켓몬 마라톤 얘기 거기까지는 나도 별생각 없이 봤어. 포켓몬도 귀엽고 교토도 멋지고. 다 좋았었는데."
나와 그녀는 잠시 동안 말없이 검은 화면을 보았다. 여전히 수많은 이름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웠어.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찾아와 줘서."
"뭘 그런 걸로. 당연한 건데. 요즘은 어때? 생각해 보니 이걸 직접 물어본 적이 없네."
"가끔 안 괜찮은 거 빼면 괜찮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긴 싫었다.
"멍청야. 그게 안 괜찮은 거잖아."
그녀가 고개를 내게서 돌린 채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울진 않았으니까. 대견하지 않아?"
"나이 30의 다리털 수부룩한 아저씨 주제에 별 걸 다 자랑하네."
"자랑할 게 별로 없는 인생이라서."
"내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마."
그리고 우린 다시 조용히 앉아있었다. 화면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아직 내가 만든 끝이 올라오지 않았다.
"고마운 사람이 많은 모양이네. 크레디트가 끝나지가 않아."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서 새는 데 고생했지. 그중에는 이름이 두 번 세 번 나오는 사람도 많아."
"누가 엔딩 크레디트를 그딴 식으로 만들어! 이름은 한 번만 나와야지."
그녀가 톡 쏘듯이 말했다. 다시 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쿠키영상은 없어?"
"그건 만들면 슬플 거 같아서 안 만들었어. 몇 년 지나서 만들려고. 나도 울기 싫고 다른 사람들 울리긴 더 싫어. 연말에는 웃으면서 끝내고 싶어."
그렇게 화면에는 끝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해당글은 일년을 되돌아보며 영화를 만들고 그걸 상영한다는 상상으로 적은 글입니다. 나만의 상영회를 했다는 느낌으로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이번년도에 영화관을 가본적이 없다는게 재밌는 포인트였습니다. 작년에는 아빠랑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네요. 듄2를 같이 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