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도 너무 많으면 힘들어진다는 당연한 사실
1.
지난 몇 주간 나답지 않게 새로운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각종 학원과 모임의 연속이었달까. 대부분의 장소에 10~15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다. 모임을 반복할수록 이 정도 명수가 모이는 자리가 나에겐 굉장히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한테는 많아도 6명? 정도 모이는 게 적절한 사람 수로 느껴지는데, 모임을 주도하는 인사이더(아웃사이더의 반대)들에게는 또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다. 대부분의 학원/모임 커뮤니티에서 최소 7명~최대 15명? 정도로 인원을 정해두고 있는 걸로 보아 든 생각이다. 역시 나란 인간이 지나치게 소규모 모임에 특화된 인간으로 태어나버린 것일까.
2.
여하간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기력이 달리고 만사가 다 귀찮아져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관계도 너무 많이 한 번에 경험하려다 보니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진 것 같다. 나 같은 지극히 내향형 인간은 한 번에 한 명씩 천천히 소화해 내야 하는데, 이건 뭐 때려 넣듯이 사람들을 막 마음속으로 들여놓았으니 체할 수밖에. 당분간은 다시 속도 조절을 하며 가고 싶은 모임만 취사 선택해서 조금씩 나가 보려 한다. 컨디션 조절이 1번이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고프다.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로 수다 떨 수 있는 친밀한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10여 명이 처음 만나는 자리만 계속 나갔으니 내가 원하는 관계를 지금 당장 가지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운명 같은 사람(성애적 관계가 아닌 친밀도로만)을 꿈꾸는 것 같다. 이런 나 정말 어찌해야 할지.
4.
회사 건물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하루에 거의 세 번씩 가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한 번, 점심때 한 번, 오후 늦게 한 번. 너무 자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 직원분들이 내가 주로 주문하는 메뉴를 다 외웠다. 저번에는 늘 단 음료를 시키던 시간(오후 늦게)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니까 직원분이 '어 오늘은 아메리카노로 하시네요?' 하고 아는 체를 해오더라. 예전의 나였으면 직원이 아는 체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반가웠다. 어쩌면 내가 지금 원하는 관계라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늘 주문하는 것이 아닌 것을 주문할 때 알아채주는 정도의 가벼운 친밀감.
5.
지난 주말에 SETEC에서 개최된 '굿즈이즈굿' 페어?에 다녀왔다. 서일페보다는 규모도 작고 방문객도 적어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를 내세운 부스들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많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관심을 받기 위해 부스를 꾸미고 이벤트를 벌이지만 사람들 눈에 들기 쉽지 않다는 현실이 왠지 나를 슬프게 했다. 나도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글이든 영상이든) 그것으로 관심받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껴서 괜히 그런 것 같다.
6.
사실 요즘 정말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애초에 글에 번호를 매겨서 쓴다는 것 자체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글을 쓰지 못한다는 뜻이므로(내 경우에 그렇다) 좋은 사인이 아니다. 더욱이 생각을 글로 뱉어낼수록 비문만 늘어나는 것 같아 쓰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를 멈춰 버리면 더 절망스러운 결과(아무것도 없는)가 나올 것을 알기에 이를 악 물고 글을 쏟아내고 있다. 뭐라도 남겨놓는 게 미래의 나를 위해 더 낫겠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