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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기대에서 비롯됨을 안다



사실 최근에 쬐금 글쓰기 슬럼프였다. 아니 대체 뭘 했다고 슬럼프란 말인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답할 말은 없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브런치북 대상 발표 이후 쭉 슬럼프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에 관련된 나의 찌질한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늘 나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험을 보면 100점을 맞아야 만족했고,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야 만족했다. 그리고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나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냈다. 시험을 곧잘 봤고, 원했던 수준보다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악착같이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늘 나 자신에게 엄격했고 그 엄격한 기준을 얼추 맞춰가며 살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내 인생은 그랬다. 그 한 단계 한 단계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해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도 안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진짜 간절하게 바랐던 건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나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기를 바랐다. 막 글만 쓰면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그럭저럭 성취했던 나는 글쓰기를 포함한 예체능에서는 어쩐지 고만고만한 성과만 만들어냈다. 체육은 심하게 못했고, 미술이나 음악은 겨우 평균 수준이었으며, 글쓰기는.. 글쓰기는 그나마 잘한다 소리를 좀 들었지만 내가 바랐던 만큼 엄청나게 잘하지는 못했다. 중고등학생 때 기회가 될 때마다 나갔던 백일장에서는 늘 장려상 정도를 받거나 입상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나에게 일종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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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Yuris Alhumaydy



그렇게 '글쓰기를 내 욕심만큼 잘하지 못하는 나'에서 도망쳐 일반적인 회사원의 인생을 산 지 십여 년 만에,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는 다시 나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초반에 이상하게도 다음 메인이나 브런치 메인에 몇 번 노출되면서 몽글몽글 돋아나던 기대에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이제는 내 글이 막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때 내 기대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심지어 이번엔 다른 때와 달리 50개나 뽑는다지 뭐야, 마치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이!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당연하게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탈락했다.




프로젝트에 선발되지 않고도 한동안은 그럭저럭 잘 지내며 글을 계속 써 나갔다. 소재도 아직 산처럼 쌓여 있었고, 쓰고자 하는 의지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 약간의 어둠이 생겨났고 그 어둠이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너는 상 받을 만큼 글을 잘 쓰지 못하지. 너는 글 써서 먹고살 만큼의 재능이 없는 거야.'라는, 스스로를 힐난하는 말들이 자꾸만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는 글을 쓰면서 내 글을 혐오하는 나를 발견했다. 겨우 이것뿐이야? 이것밖에 쓰지 못해? 그때부터는 글을 쓰는 게 고통이 되었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는 나도 지극히 잘 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브런치 플랫폼에서, 고작 50편 뽑는 브런치북 대상에 선정되지 못했다고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실망을 해? 그야말로 자의식 과잉이 따로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나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걸. 그만큼 간절하게 글쓰기로 잘 되고 싶고 글로 상도 받고 관심도 받고 싶은걸. 이제 그냥 이런 찌질한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애써서 괜찮은 척하는 대신, 사실 지금 안 괜찮고 좋은 글을 써서 관심받고 싶고 잘 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로 했다. 이런 나를 인정해야만 다시 멀쩡한 나로 돌아가 평소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오늘 쓴 이 글은 정말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글을 쏟아내야만 내가 다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글을 남겨둔다. 찌질하지만 솔직한 내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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