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승진시험을 볼 생각이 없었다
1차시험을 통과후 2차 시험을 한번 봤는데 당시 뽑는 인원이 적었고, 아이들이 어렸고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봐서 첫번째는 떨어졌었다. 그 후에는 육아로 바빠 승진 하려는 생각이 없어져서 몇년이 지나도록 시험응시를 하지 않았다. 승진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끄고 회사일과 육아에 신경썼었다.
이후 내가 육아휴직 중에 남편은 승진을 하고 싶어했는데, 그 당시는 코로나여서 아이들이 학교를 거의 가지 않고 집에 있을때라 나는 육아와 가사, 재테크, 애들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아이들 학원 픽업에 지쳐있을 때였다. 남편이 승진을 하고 싶어했기에, 즉 2차 시험을 보고싶어했기에 나는 남편의 승진시험 연습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직군이 서로 달랐지만 시험에 나오는 내용은 공통이었다. 인바스켓과 보고서를 쓰는것이 2차 시험이었다. 즉, 글쓰기 시험과 비슷했다.
사실 나는 남편이 승진해도 되고 안해도 되었다. 그건 전적으로 남편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승진을 원한다면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2차 시험을 볼 생각이 없었기에 가산점이 있던 토익도 아예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험 한달 전, 회사 인사담당자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선배님, 시험 보시겠어요?' 아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 잠시만요 생각해보구요.'라고 이야기했고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은 시험을 보는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권유했다. 이번부터 바뀌어서 시험을 보든 안보든 3번의 기회중에 한번은 없어진다고.. 내가 남편에게 '만약에 붙으면 어쩌지?' 라고 했더니 남편이 '붙고 나서 생각해.' 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준비도 별로 하지 않았기에 설마 붙겠어?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승진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었기에 남편을 서포트해주기로 했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와 가사를 메인으로, 시험준비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회사에서 시험보기 얼마 전, 차장을 뽑는 인원이 공개되었는데 내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뽑았다. 그리고 시험 당일 시험지를 받아봤는데 생각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경쟁률이 2대1은 넘었기에(어떤 직군은 거의 미달인 직군도 있었다) 공부도 별로 안한 내가 붙겠어? 라는 생각이 있었고 마음 편히 있었다.
합격자 발표날,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남편의 친구가 먼저 합격자 명단을 남편에게 보내줬고, 평안이도 붙었네?라고 했다. 2020년, 남편과 나는 동시에 승진시험에 합격하게 된 것이었다.
에잉? 내가 붙었다고? 그때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붙다니..시험이 정말 공평하긴하네.. 그런데 차장 되면 힘들다는데 어쩌지? 괜히 시험을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시험을 보고 발표나는 며칠동안 스트레스를 받았고, 발표가 나고 나서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발표나는 며칠동안 평안했고, 발표가 나고 나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어쩌다 승진하게 되었다. 승진을 위해서 예전에는 몇년동안 힘들게 공부해도 안되어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거저 된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나는 시험을 잘 보는 편이다. 수능을 제외한 모든 시험을 잘 봤다. 중학교 3학년때 평준화 지역에서 비평준화 지역으로, 고등학교 입시가 도에서 제일 치열한 곳으로 이사와서 다른 아이들이 3년동안 힘들게 공부했던 것을 나는 1년 힘들게 공부하고 그 지역 최고명문고에 합격했었다. 또한 자격증 시험도 며칠 공부하고 한번에 붙었으며, 몇백대 1이었던 우리회사 입사할 때도 전공 과목이 다른데 열흘 공부하고 전공시험에 합격해서 입사했으며, 파키스탄에 있을 때에도 어떤 우리회사 직원이 3번만에 딴 현지 운전면허증을 나는 한번에 땄었다. 난이도가 더 높았는데도 불구하고..(그래서 이런 것들을 돌이켜볼때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자격증 시험을 볼걸, 괜히 승진시험을 봤네. 싶은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도 그당시에는 차장이라는 직급을 경험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에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했었다.
그때까지만해도..
하지만 차장으로 실제 근무해보니 생각보다 차장이라는 자리는 정말 매운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