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의 각인

서늘한 밤공기에서 환각 같은 기억을 소환하다

by 피스타치오 재이


뺨에 닿는 공기가 서늘해졌다.

코끝을 스치는 시린 밤 내음.

그것은 밤 내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거야

저릿할 만큼 순간적인 두근거림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밤에만 찾아오는 손님처럼

기온이 전하는 시간의 소환에는 속절없이 동요당하고 만다.


왜 벌써 십수 년이 지났는데

이 시원해질 때 밤공기를 마실 때면 아직도 아득해지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때의 시간은 불과 일이 년밖에 안 되는 것들인데

이 맘 때만 되면

공기를 흡입하는 순간 뱀파이어로 변해

순식간에 그때로 빨려 들어간다.


살갗에 닿는 달의 공기가

새까만 하늘로 날아가던 새하얗던 담배 연기가

길거리 중간에 우두커니 멈춰 세운다.


외로움과 고독을 알게 된 시기의 궁핍과 공허는

계절에 각인되어 되돌이표처럼 매년 찾아온다.


몸을 벅벅 긁다 피가 맺혀 따가워질 즈음 정신을 차린다.

여기가 어디지

지금 나는 누구지

한참을 서 있다.


.. 이것도 지나가려나

그러다 헛웃음

내년에 또 오겠지


서늘해진 공기에 담긴 유년기의 시간은

한 밤 자고 나면 잊혀질줄 알았는데

없어진 게 아니고

세월의 망각 속에서 잠시 부유하고 있던 거더라.

공기의 부름에 다시 떠오를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거였더라.


이제는 그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아주 작고 여린 그 소녀를 꼬옥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도 아무 말도 해주진 못 할 거 같아.

해줄 수 있는 말을 아직도 못 찾았다.


"왜 여기에 있니"

"갈 곳을 찾지 못해서요.."

"어디로 가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때가 되면 나는 알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 그럴 줄 알았어요"

"지금도 모르고 그때도 모른다면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

".. 그냥 걸을래요.. 비나 왔으면 좋겠어요. 한참 동안 시원하게 맞으면 복잡한 머리가 그나마 나아질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 병원 앞에서도 그렇게 우산이 있으면서 맞고 갔던 거였어?"

"가엾어 보였는지 누군가 씌워줬어요. 그 선의가 고마우면서도 번거로웠어요. 그냥 아는척하지 말아주었으면..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떠돌아다니고 싶었어요. 그러면 자유로워질거같아서"

"누군가의 선의가 불편하니"

"나는 온전히 내가 아니니까.. 진심으로 다가오는데 나는 진심을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 나는 숨겨야 하니까 나를요"

"너의 무엇을"

"나의 갈망을.. 나의 부재를.. 나의 존재를.."

"그래서 이맘때면 나를 찾아오는 걸까 너는. 차가운 공기 속에 섞여서.."

".. 아직도 너는 진짜 네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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