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마다 300여 명의 1, 2학년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14개 반에서 1학기 동안 수업한다.
1학기면 4개월 반 정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학급의 특성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반마다 담임의 학급 운영 방식, 아이들의 특징, 그 둘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이 다 다르다.
2달쯤 지나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나도 사람인지라 드러내지는 않지만, 학급에 대해 호, 불호가 생긴다.
그 해 내게 불호 중의 불호인 1학년 반은 2반이었다.
내게 불호였던 이유는 뒤쪽에 앉은 남자아이 몇몇의 에너지가 너무 컸다. 아이들의 에너지가 크면 활기 있게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문제는 1학년인지라 적절하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아이들은 열 마디, 백 마디, 천 마디를 했다. 하나하나의 사안마다 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서로가 시비했다. 그러다 서로 말싸움으로 번지기도 해서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1학년 2반에만 들어가면 '앞으로 보세요.'. '집중', '선생님'~ '봅니다' , '그만! 앉아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등 수업 주제와 관계없고, 오로지 주의 집중을 위한 구호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되는지 정작 내가 해야 할 말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두더지 잡기 하듯, 1 분단 맨 뒤의 승우를 집중하게 하면 3 분단 중간의 경수가 뭐라 하고, 그걸 말리다 보면 2 분단 중간의 현택이가 경수가 말 꼬리를 잡고, 그것을 성진이가 승우의 편을 들며 시비를 하는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몇 번 그 상황을 진정시키는 과정이 꼭 물을 가득 머금은 솜이불을 어깨에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 같았다.
그 에너자이저 중의 원탑은 바로 성진이었다. 성진이는 빠르고, 키가 크고, 힘도 좋아 잘 지치지도 않았고, 목청도 컸다. 반에서 제일 컸다. 그런데 성진이가 말을 하면 소리는 큰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말이 빨라서 그런가 했는데 빠르기도 했지만, 가만 들어보니 말을 더듬었고, ㄱ발음이 뭉개졌다.
성진이는 끼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앞서 말한 여러 에너자이저들에게만 상관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있는 듯 없는 듯 화초 같은 아이들에게도 참견했다. 그러나 늘 이렇게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성진이의 모든 에너지가 참견을 넘어 간섭으로 집중되는 시간은 바로 수업 시간이었다. 창가 쪽 1 분단 맨 뒤에 앉아서 3 분단 맨 앞에 있는 효민이가 화장실 가는 것까지 '화장실 목걸이'를 걸고 어디 가냐고 할 정도였다.
쉬는 시간만 되면 성진이는 에너자이저 중 하나인 승우와 둘이 모여 "로블록스 놀이할 사람 여기 모여. 10, 9, 8...." 하면서 놀이를 제안하고 여러 아이들과 정말 신나게 놀았다. 내가 다음 시간 수업을 위해 1분이라도 일찍 쉬는 시간을 침범하면 바로 서릿발같이 "아직 1분 남았어요!!"라고 소리치고 일부러 들어가지 않겠다는 듯 뒷공간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바라보며 버티곤 했다.
이런 성진이에게 사사건건 교실에서 지킬 규칙을 들이대며 옥신각신 하다 보면 결국 나도 성진이도 서로 기분이 상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월요일 아침이면 그 주에 1학년 2반 수업이 언제 들었는지를 확인하고, 성진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그때 위안은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을 하는 나도 이런데 성진이의 담임 선생님 노고는 얼마나 클까였다.
근데 수업 시작하기 전, 혹은 지나가며 가만 보니 성진이는 담임 선생님한테는 나에게만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처음엔 내가 만만한가? 싶어 기분이 나빴지만, 7살짜리의 단순함을 다시 떠올렸다. 만일 성진이가 담임 선생님과 나를 구분해 행동한다면 내가 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반에 비해 유독 내가 2반에 예민하다면 다른 반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내가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같은 주제로 7개 반 수업을 하지만, 각 반의 특성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은 달랐다. 아이들이 말하기를 좋아하면 발표기회를 더 주고, 그리기를 좋아하면 조금 더 충분히 그릴 수 있게 시간을 주고, 움직이기를 좋아하면 그 활동을 더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하려 했다. 그럼 2반은? 그런 게 없었다. 아이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부담감에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지 않았다. 그보다 집중하지 않는 에너자이저들을 진정시켜 서둘러 입에 떠 넣듯 수업하는데 급급했다.
이런 내 모습은 최혜경 전 수석님이 관내 교사를 대상으로 한 특강 'AI시대에서 바라보는 수업의 본질'에 서서 자신의 수업을 보여주었을 때 더 극명하게 다가왔다. 수학과를 오래 연구하고, 아이들과 어떻게 수업해야 하는지 고민해 오신 수석님의 수업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고속도로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쭉 가지 않았다. 굽이 굽이 흐르는 강처럼 가는 듯하다 아이들의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머물렀고, 목표에 도달해 마무리하다가도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싶으면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갔다. 철저히 아이들의 상황에 맞춰 진행되었다.
내가 왜 그랬지? 뭐가 그리 급했고, 매끄럽기를 바랐지? 좀 시끄러우면 어떤가, 좀 돌아가면 어떤가, 사실 준비한 활동을 모든 아이들이 다 못했다고 해도 공부가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는다면 충분히 다음 시간에도 이어갈 수 있는데. 너무도 일방적이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부담으로 꽉 찬 압력솥 같았던 내 마음에 김이 빠지듯 편해졌다. 나는 2반 수업을 앞두고 내가 준비한 수업 안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날 나는 거인을 주제로 2시간 수업을 준비했었다. 먼저 영원한 고전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라는 그림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거인이 오늘 함께 공부할 내용임을 알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알고 있는 거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만일 내가 거인의 나라에 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해서 이야기한다. 상상한 것을 학습지에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다. 이후 2번째 시간에서는 아이들이 완성한 학습지를 실물화상기에 비춰 발표하고, 거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모둠끼리 의논해 태블릿 PC로 찍고 전제 발표한다.
다시 보니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활동이 많으니 시간이 빡빡했다. 뭘 덜어내지? 2반 아이들은 에너지가 많아서 듣기보다 자기가 말하기를 좋아했다. 일단 그림책을 덜어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자기가 아는 거인에 대한 이야기와 그런 거인의 나라에 초대되어 간다면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기대와는 다르게 '거인과 싸움을 하고 싶다', '용을 러시아, 중국, 일본에 보내 사람을 잡아먹게 하고 우리나라 땅이 더 넓어지게 하겠다.' 등등 폭력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적절하게 받아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겠는데 땅을 뺏긴 나라 사람들은 어떨까?' 등을 질문하며 살살 긍정적인 분위기로 이어갔다. 결국 그 이야기를 한 아이는 거인과 프랑스에 여행 가서 에펠탑을 바로 올라가겠다로 바꿨다. 이런 이야기에 아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으로 즐거워했다. 그 여세를 몰아 학습지에 표현했다.
이어지는 시간에 학습지를 발표했다. 실물화상기에 학습지를 비추고 한 명씩 자기 것을 발표시키려고 했다. 그 순간 이전 시간에 목에 핏대를 올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성진이가 눈에 띄었다. 성진이를 '꼬마 선생님'으로 나 대신 아이들이 쓴 글을 읽도록 제안했다. 성진이는 내 제안에 쭈뼛거리며 나와 '.. ㄱ. 김을 잘 못하는데요.'수줍게 말했다. 성진이에게서 처음 보는 태도였다. 나는 발음은 도와줄 테니 해보라고, 대신 아이들이 맞춤법 틀리는 것을 즉석에서 고쳐서 말이 되게 읽어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결기가 얼굴에 서리는 것 같았다. 성진이는 큰 목소리로 아이들의 이름과 거인의 나라에 초대되어 가면 하고 싶은 상상을 읽었다. 아이들은 누구의 이야기가 등장할지 초집중해서 보았다. 첫 ㄱ발음이 조금 뭉개졌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오~ 잘했어. 성진이 덕분에 선생님 목이 덜 아프다고 고맙다며 작게 성진이에게 속삭였다. 어깨도 함께 두드리며.
그 순간 성진이의 등이 더 꼿꼿하게 펴지는 것을 목에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진이는 '거인 배애서 방방 띠고 싶어요'를 "ㄱ어거인의 배에서 방방 뛰고 싶어요."라고, '거인과 차칸을 합께 머꼬 싶다'를 "ㄱ어거인과 치킨을 함께 먹고 싶다.'라거나 '거인의 목욕탕애 수영을 하고 싶습니다'를 "ㄱ어거인의 목욕탕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읽었지만, 처음보다 훨씬 발음이 또렷했다.
원래 목청이야 커서 교실의 맨 뒤의 아이들까지도 들리는 건 당연했지만, 발음이 뭉개지지 않아 전달력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귀를 쫑긋 기울였다. 성진이는 10장의 학습지를 읽은 후, 두 번째 꼬마 선생님과 교대를 할 때가 되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볼도 귀도 빨개져 있었다. 나는 자리로 가는 성진이에게 '너는 읽기도 잘하는 꼬마 선생님이니까 듣기도 잘해야 한다'며 일침을 주었다. 성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자리로 들어갔다.
물론 두 번째 꼬마 선생님이 낭독할 때 성진이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처럼 "우와, 거인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큰데? 아이스크림 계속 먹으면 똥 싸요."등과 같이 훈수를 두었다. 그러나 내가 입술에 손을 갖다 대며 눈짓을 주면 흠칫한 후, 자신도 입술에 손을 대고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런 성진이를 보는 내 입가에는 살포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칠판을 정리하는데 늘 악착같이 쉬는 시간을 챙기던 성진이가 웬일로 단짝 승우와 함께 내 옆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한 시선에 성진이가 보드마카 지우개를 잡았다. "ㅈ제가 지울래요." 그리고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며 판서를 지웠다. 아주 위쪽 팔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은 승우가 성진이를 안아 올렸다. 다른 아이들도 칠판 쪽으로 몰려들었다. "저요. 저도 지울래요.", "저도 지우고 싶어요."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지우고 싶을까. 벌떼처럼 나를 둘러싼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아, 오늘은 성진이가 꼬마 선생님이니까. 성진이야 지울 거예요." 내 말에 실망하는 아이들 사이로 성진이는 더 신나서 칠판을 지웠다.
돌아보니 성진이가 얼마나 힘줘서 지웠는지 칠판이 유리알 같았다.
에너자이저는 에너자이저다.
그 분출하는 에너지를 나는 막을 수 없다.
다만 에너자이저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도록
적절하게 물길을 가두기도 하고 터주기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