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트, 이젠 안녕!

by 쏘댕샘

나는 웨이트를 정말 좋아한다.

30년전부터 시작한 웨이트는 내 인생의 친구다.

위의 두 문장만 본 사람들은 아마 내 몸을 헬스 잡지에 나오는 선수 쯤으로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글로 보여줄 순 없지만, 한 마디로 참 하찮다.

아무리 운동해도 근육이 잘 붙지않는 대한민국 표준의 50대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웨이트 사랑을 막을 순 없었다.

단 한 번의 PT도 없이 지켜온 웨이트에 대한 일편단심은 소위 '육체미 체육관'의 고인물 아저씨들 덕분이다.

90년대 초, 동네에 지금식으로 말하면 휘트니스 센터인 헬스 체육관이 하나 둘씩 생겼다.

헬스만 하는 체육관도 있었지만, 합기도 + 헬스, 태권도 + 헬스 식으로 무술 한 가지와 콜라보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았다. 1992년 내가 처음으로 다녔던 북두 체육관은 4층 헬스장, 5층 합기도 수련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때는 등록 후, 관장님이 몇 번 헬스 기계 사용법을 알려주고 나면 관원들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세를 잡아갔다.

그 중간을 메우는 것은 몇 권의 미국판 헬스 잡지와 고인물 아저씨들의 훈수였다.

당시 여자들의 운동은 에어로빅이 대세였던지라 헬스장에서 나는 이른바 희귀템 20대 여자 청년이었다.

고인물님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친절한 오지랖으로 내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사실 나는 몸 쓰는 일을 잘 못한다.

힘도 약하고, 순발력도 없고, 처참할 정도로 뻣뻣하다.

그런 내게 초, 중, 고 체육시간은 악몽 그자체였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 입시에 체력장이 있었다. 학력고사 320점에 체력장 20점이 포함되어 340점이 만점이었다. 100M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공던지기, 제자리 멀리뛰기, 오래 달리기 등을 일정 점수 안에 들어오도록 기록을 내야 했다. 당시 우리 학교 교기였던 양궁부 아이들과 체육에 특출난 재능이 있던 몇 명을 제외하고 체력장에서 각 종목마다 만점받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체육 선생님들은 무섭게 우리를 다그쳤고,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들었던 체육시간마다 나의 하찮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나는 체육시간에 최하위권이었다.

하위권들은 종목 연습을 마친 다른 아이들이 나무그늘에서 쉴 때 늘 선생님의 화난 잔소리와 함께 더 연습했다. 내겐 특히 심한 잔소리의 조리돌림이 돌아왔는데 그건 내가 또래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 체육을 잘 해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하위권들은 작고 여리여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비만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선생님들 보시기에 꽤 멀쩡한 내가 공던지기에서 9M 기록을 내니 아마 장난치는 것 같이 보였으리라. 당시 내 기억으론 30M를 던져야 여자 공던지기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내게 체육시간은 공포였고, 나는 체육선생님을 저주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런 내게 웨이트는 신세계였다.

1991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멋부리기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그런데 166cm에 70kg가 훌쩍 넘는 내 몸에 맞는 예쁜 옷이 별로 없었다.

죽기보다 싫었던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했다. 웨이트에 앞서 '김연홍 에어로빅 교실'을 찾았다.

엄청난 음악소리와 함께 김연홍 선생님과 강사님 둘이 거울 앞에서 동작을 하고, 뒤에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좀비처럼 똑같이했다.

나는 김연홍 선생님의 조언대로 구입한 뻔질뻔질하고 딱 붙는 에어로빅복을 입고, 사람들 맨 뒤에 숨듯이 서서 따라했다.

거울로 보면, 내 팔이나 다리, 혹은 배쪽에 칼만 대면 옷이 쫙 터질것 같았다.

동작도 늘 엇박으로 놓치거나 앞서서 옆 사람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땅 속으로 꺼지고 싶은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2달 동안 헤매도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살도 안 빠졌다.

그러다 에어로빅 교실 강사님들이 운동하는 길 건너편 북두체육관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강사님들 따라 체육관에 가본 나는, 웨이트의 자기주도성에 반했다.

아무도 더 빨리하라고, 더 많이 하라고, 더 오래 하라고 독촉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게 맞는 속도대로 하면 되는구나!


처음 렛 풀 다운을 한 날을 잊을 수 없다.

팔로 바를 잡고 내리는데 호흡을 후 뱉으라고 했다.

힘을 팍 풀지말고, 천천히 버티듯 바를 올리며 호흡을 흡 마시라고 했다.

그것을 15회 반복하라고 했다.

관장님이 가고, 나는 후, 흡 하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생각하며 천천히 동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요한 리듬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몸과 호흡이 일치하는 고요가 머물렀다.

끝나고 나니 몸은 힘들어 나른하지만, 설명할 수 없이 편안하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했다.

다음 날 등은 말짱하고, 팔과 승모근에 엄청난 근육통이 찾아왔다.

관장님 말로는 등을 못써서 팔로 당겨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든지 말든지 나는 웨이트가 재미있어져 버렸다.


그렇게 30년을 함께 했던 웨이트였다.

내가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차였던 날에도 이를 악물며 레그 프레스를 밀었다.

에일리의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라는 노래가 그때 있었다면 나는 들으며 쇠질을 가열차게 했겠지.

다음 날부터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근육통으로 푹 쉬는 동안, 너덜너덜해졌던 마음도 회복되었다.

삶은 계란과 닭가슴살을 먹어도 살만 찌고, 근육은 잘 보이지 않는 근돼의 표본이었지만, 나는 계속했다.

그런데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G-드래곤의 노래가사처럼 맞다, 웨이트도 그랬다.

드디어 나도 웨이트와 이별할 날이 왔다.


얼마 전 9월 어느 날 저녁, 그날 따라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몸을 풀고 체스트 프레스를 밀었다. 또 숄더 프레스도 밀었다.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자꾸 더 하게 되었다. 무게도 평소보다 더 무겁게 해보고, 횟수도 더 했다.

운동이 끝났는데도 스트레칭도 하고, 가슴을 더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날 밤, 나는 자다가 윗 가슴이 너무 아파 숨을 못 쉴 것 같은 느낌에 잠에서 깼다.

숨만 쉬어도 뜨금거리고, 오른팔이 아파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며칠을 아파서 끙끙거리니 후배가 가슴 뼈에 금이 가면 그럴 수 있다고 병원에가서 사진을 찍어보라 했다.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 싶어서 두려웠다. 근데 쇠질을 좀 했다고 뼈까지? 아, 무섭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당분간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물리치료와 소염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당분간이라고 했으니 영원히는 아니지만, 나는 내가 웨이트를 해서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오랜 사랑을 잠시 거두고, 다른 운동을 시도해 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랫동안 검색을 한 끝에 내가 선택한 운동은 예쁜 운동, 필라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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