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수정구슬 과학은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인류 역사에서 과학은 산업과 전쟁과 함께 발전했다. 철학이나 인문학에 비해 한때 부유층의 취미생활쯤 되던 과학이란 분야는 서구사회에서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비로소 학문의 틀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고 본다. 욕망의 인류는 전쟁이 있으면 과학이 만들어 낸 특별한 기술을 써먹으려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했고 겉으로 보기엔 그것이 과학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리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인간은 온갖 다른 모양으로 호기심을 풀어왔다. 오랜동안의 관찰을 기록하고 시험해 본 것을 기록에 남기는 방법은 거의 기본이었다. 기록을 하기 위해서는 문자가 발달해야 했고 관찰한 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정리하기 위해 수학과 여러 가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여기까진 사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 아는 것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과학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답은 더 복잡해진다. 우리 사회는 수 천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제법 건강하게 생존해 왔건만 근대에 와서는 식민지도 겪었고 내전도 겪었기 때문인지 학문과 기술, 예술까지도 돈과 연결이 되어야 가치 있는 것이라는 관념이 다른 사회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갈다. 또한 애국심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기도 하다. 과학에는 국적이 없으나 과학자에겐 국적이 있다는 생물학자 파스퇴르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을 책상머리에 붙여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돈과 애국심과 과학이라는 아주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 가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 섞여서 돌아간다. 나는 학창 시절 과학을 공부하는 학과에서 인문학까지 포괄하는 내용의 학회지를 만들려고 했을 때 선배들의 심한 반대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들은 과학도는 과학만을 공부해야지 인문, 사회 쪽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시간을 뺏긴다는 점에서 반대했을 수도 있으나 당시 시대 분위기로는 인문학, 사회학 쪽의 공부를 하면 운동권 학생이 된다는 선입견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운동권이란 말은 80년대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가 만든 용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단어가 붙는 순간 그것은 당사자에게 훈장이자 낙인이었다. 의식화라는 말도 유행했다. 인문, 사회학 공부를 하면 학생이 의식화된다고 학교 당국이나 선배들이 반대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 모 신문 만평가가 그러면 학생들이 무의식화 되어야 하냐고 풍자하기까지 했었다. 과학은 인류 지성의 결정체이다. 지식의 축적의 결과이고 지혜와 경험이 만든 과실이다. 이 과일이 열매 맺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인간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이젠 누구나 안다. 어떤 현상이든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원인과 결과를 찾고 그 사이의 논리적인 연결을 찾는 과정 하나하나를 우리는 과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예를 들면 수학과 수사학에서 발전한 논리학이 현대 컴퓨터 과학의 기본이고 심지어 요즘 한창 뜨는 AI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편하게 무시되기 일쑤이다. 논리학과 수학을 비롯한 과학의 바탕을 구성하는 학문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와도 연결되어 있다. 다수결이나 만장일치 같은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때에 그런 사회제도와 인식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발전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동양의 과학발전이 느렸던 이유가 산업혁명이 서구에 비해 뒤졌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무시하기 어렵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사실이나 인과관계를 증명할 필요가 적었기 때문에 그런 증명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체계가 발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과학사가들이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증명하다’는 또한 왜곡되기 쉬운 문장이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거짓말이 제일 좋은 도구이고 여기엔 증명되었다는 속임수를 붙이는 것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 정부에서 과학연구 쪽에 들어가는 국가의 예산지원이 30% 가까이 줄었을 때 과학계는 비명을 질렀다. 과학연구도 따지고 보면 먹고살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노동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사명감이 밥이 안되면 사람들은 일손을 놓을 것이 아닌가. 현대에 와서 돈과 민주주의와 과학은 커다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다.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슬은 돈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 구슬을 닦고 제 자리에 올려두려면 노동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미래를 정직하게 보여주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수정 구슬 같은 현대 과학은 그 모든 준비가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제대로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문학과 수학, 과학이 고르게 발전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회에서야 비로소 가치 있는 과학기술이 탄생한다. 뿌리가 고루 퍼져야 나무가 크는 것처럼.
20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