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년 12월에 국내에서 일어난 큰 사건 때문에 바로 앞에 있었던 세계 기후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가 알려지지 않고 지나갔다. 부산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회의가 그것이다. 2025년 유엔 플라스틱 협약체결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는데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마쳤다고 한다. 대략 알려진 건 특히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폴리머'의 생산 규제에 관한 것인데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쪽은 폴리머 생산을 줄이자고 하는데 비해 산유국을 중심으로 하는 쪽은 생산을 줄이기보다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맞추자고 하여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각국 정부가 플라스틱을 비롯한 환경문제에 둔감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플라스틱이 처음부터 이렇게 문제가 된 건 아니다.
합성수지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은 처음엔 오히려 환경을 지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에서 19세기 이후 급격히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당구를 즐기는 인구가 늘었고 당시엔 당구공을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환경도 파괴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구공 생산업체들이 새로운 재료를 찾는 공모를 했고 한 발명가가 상아가 아닌 셀룰로이드라는 물질로 만들어서 상을 탄다. 이후 자연에서 바로 얻지 않고 여러 화학반응이나 처리를 거쳐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발견, 발명이 많아졌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주로 석탄과 석유가 원재료가 되었다. 셀룰로이드 다음엔 전기의 시대에 맞게 전기기기에 쓸모 있는 플라스틱이 등장했다. 아스피린이 그랬던 것처럼 베이클라이트라는 단어는 고유명사처럼 쓰였다. 얼마 전까지 온갖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회로기판은 이 베이클라이트라고 불린 페놀수지로 만든 판 위에 구리로 된 배선을 인쇄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플라스틱을 발명한 사람은 당시 엄청난 부를 쌓았고 부작용인지 가족 내에서 생긴 이상한 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많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좋은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일론과 베이클라이트의 시대가 지나고 있었고 이윽고 폴리라는 접두사가 붙는 여러 물질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폴리에틸렌이 그 시작을 알렸는데 이 물질도 석유에서 나오는 에틸렌이란 기체상태의 물질을 화학자들이 이런저런 조작을 하다가 거의 우연히 발명했다. 처음엔 무슨 용도로 쓸지 모르다가 이 플라스틱이 전기절연체로 좋다는 것이 알려져 2차 대전 당시 레이다 같은 고전력 장치를 만드는데 아주 유용했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자연계에선 썩지 않는다. 가소제를 넣어 만들면 얼마든지 여러 모양으로 가공하기도 쉽다. 석유 와 석탄의 생산이 늘어나니 원재료도 구하기 쉽다는 장점으로 해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구 위 어디서든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썩지 않는다는 성질이 세월이 지나 문제가 된다.
썩지 않고 분해가 되지 않는 물질은 인류는 처음 만났다. 이전에 폐기물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것은 분해되고 부패되어 자연에 돌아가는 물질만 있었기 때문이다. 태우기도 어렵고 가소제로 들어간 것이 타면서 독가스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아예 태워도 분해되지 않고 흩날리기만 하는 것도 있다.
몇 해전에는 깊은 바다 탐사를 갔던 잠수정에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비닐조각을 발견해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당구공에서 레이다까지, 그리고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비닐봉지까지 인간은 우연과 돈이 자연을 망가뜨리는 장면을 늘 보고 있다.
당구장에서 코끼리를 사냥하던 상상을 하던 부르주아 청년들은 그 공 한 개 한 개가 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플라스틱은 과학자의 실험실도 아니고 거대 기업의 탱크 속에서 매일 매 시간 산더미처럼 만들어져 나와서 코끼리의 삶터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터전까지 밀려오고 있다. 치울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는 괴물이 되어 오는데 거대 기업의 손해가 자연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각국 정부는 아직 손을 놓고 있다. 내년에 좀 더 나은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 플라스틱으로 된 세계에서는 밭을 경작할 수도 없고 꽃을 가꿀 수도 없고 나무를 심을 수 없어서 인류가 질식하고 말 텐데.
2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