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에서 이 글을 쓰는 시간까지 우리나라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 속에 있다. 이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물론 많은 시민들의 힘이긴 하지만 이 힘이 모일 수 있게 한 광장과 인터넷의 영향력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터전을 계속 옮겨 다니는 수렵채집시대에서 한 곳에 정착을 하고 농경시대로 옮겨온 후 문명이란 것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많아야 몇 명, 몇 십 명이 사냥을 위해, 혹은 식량 채집을 위해 다녔다면 농사를 지을 때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모여있으면 의사소통이란 도구를 쓸 일이 늘어나고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규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농업이란 현대에도 생산량과 품질을 예측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농업을 도입하고 나서 식량사정이 오히려 나빠졌다고 보기도 한다. 심지어 수확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더 그럴 것이다.
광장은 시장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느 해에 다행히 수확이 많으면 다음 해를 위해 저장을 하거나 여기서 나지 않는 것을 다른 데서 가져오거나 가져가거나 해야 하니 창고와 시장이 필요하다. 도시가 탄생한다. 시장은 늘 유지될 필요는 없으니 그 공간이 또 다른 도시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광장이 출현하는 것이다.
도시엔 필요한 것이 많다. 어디나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있을 것이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직접 생산하지 못한다. 어디선가 공급받고 또 받은 만큼을 나눠줘야 한다.
이 인류의 삶의 터전이 모여있는 것을 우리는 문명이라고도 하고 사회라거나 심지어 규모가 커지면 국가라고 부른다.
오늘날엔 워낙 생산력이 발전해서 절대량으로 모자라지는 않으나 늘 이 세상은 한쪽은 넘치고 한쪽은 모자란다. 모자란 쪽은 채워야 하니 넘치는 이들과 싸우고 넘치는 이들은 그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싸운다. 그러니 지구 위에는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불균형, 불평등에서 오는 문제를 외면한다. 그것이 속이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개개인에 책임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속 편하게 있기엔 지구는 이제 너무 좁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소시지와 법률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당시의 기술이나 위생상태로는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도저히 먹기 싫을 것이고, 또 사회를 규율하는 법이란 것도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고 엉망이란 뜻일 것이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한 먹지 않을 수 없고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한 법률을 벗어나서 살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위생적이고 건강하게 소시지를 생산하고 더 많은 시민들에게 행복과 안녕을 가져다줄 수 있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할 수 있게 한다면 몇몇 사람들이 밀실에서 몸과 마음의 양식을 멋대로 가공하고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정의롭고 안전해질 것이다.
인터넷은 그런 세상의 투명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광장에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나누고, 도시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문명을 어떻게 유지하거나 수리하면서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데 필요한 것은 약간의 성의와 전기 에너지일 뿐이니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
동아시아 문명에는 도시의 광장이란 보기 드문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의 속성이긴 한데 어쩌다 보니 늦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골방에 숨어있거나 주저앉아서 온통 세상을 남의 일로 생각하던 이들이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 공간, 이 터전이 세상을 다 나아지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농경시대에서 인터넷 시대까지 이어지는 뺏고 뺏기는 싸움이 아니라 이젠 더 늦기 전에 인간이 가진 것을 나누는 노력이 인류사회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