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두고 시집을 한 권 냈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시인이라고 부른다
시집을 냈으니 시인이라고 불려도 무방
불리지 않아도 상관없겠으나
사람들은 꼭 언제 등단했냐고 묻는다
의사나 법조인이나 교사처럼 이 땅에서는
글 쓰는 것도 면허를 받아야 한다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일하다 보면
애송이도 능숙한 농부가 되듯
시를 쓰고 읽고 사랑하는 사람의 시가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 눈물 한 방울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되었다면 시인이지
글 쓰는 면허나 시인이라는 이름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고 중요하겠는가
대시인 누구 평론가 아무개 문하생이니 하며
따라다니다 괜히 구설수에 망신이나 당하고
그래서 얻은 이름으로 진짜 시인이 되겠는가
농부가 마음 비우고 땅을 파고 씨를 뿌리듯
살면서 느껴 깨달은 것들을 표현해서
스스로 혹시 남들에게 한 마디 또는 한 줄
마음을 적시는 시 한 줄 쓰면서
허명에 구질구질하게 욕심내지 말고
남 잘 쓴 시 읽고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시인이라는 관冠이 없어도 족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