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에서 열반에 들다

by 전종호

금수산 허공에 자그만 절 하나가 떠 있다

바위를 병풍 삼아 맑고 향기로운 정방사

가난하고 빈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부처님 앉을자리에 해우소가 모셔져 있다

먹고 비우며 순환의 일이 하늘의 순리니

감사히 먹고 겸허하게 비울 일이다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픈 사랑을 비우고

헛된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끊어내리라

해우解憂의 처소가 마땅히 부처님의 자리니

팔자 좋은 산에서 관세음의 영험을 빌며

삼동三冬의 근심과 고단한 발품을 내려놓고

편안히 비우는 곳에 자리를 잡고

티끌 하나 구린내 하나 없이

맑은 바람 가득한 발아래 세상

청풍호 달빛 물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부러울 것 없어라 세상의 높고 빛나는 것들


벚꽃 한 닢 미풍에 하늘하늘 이마에 앉으니

지금 순간이 숨을 버릴 때로구나

당장에 목숨을 거둬가도 좋으리라

정방사靜芳寺 해우소에 열반이 열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임진강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