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은 한참 비워두어도 좋으리
초록 파도와 가을 바다 황금물결 시절을 지나
댑바람이 불어도 무람한 억새밭 떼춤을 보며
무상無常한 빈들을 노래해도 좋으리
바람은 고요의 깊은 곳에서 불어오고
죽을힘을 다해 사막 지나 바다를 건너온
헐벗은 독수리에게 잠자리 안마당으로 내주고
할 일 없는 수더분한 뒷방 늙은이나
강 건너 매운바람의 한 판 굿판이어도 좋으리
군대처럼 진격하는 벌거벗은 강바람을 맞으며
가지런한 기러기떼 날아오면 날아오는 대로
총 총 총 까부는 새끼 한 마리 거느린
우아한 재두루미 에미 아비 한 쌍
발소리에 자빠질 듯 날아가면 날아가는 대로
밥맛 좋은 오금리 햅쌀 소문을 퍼뜨려
오호라 햇살 한 줌 맨주먹에 쥘 수 있다면
이 땅의 갈등과 분열을 끌어안고 조용히 사그라드는 저문 밤 빈들이면 어떻고
높고 시퍼런 철책 포위망이 걸어와
메마른 삭신을 묶어 간들 또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