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여행 칼럼〕 어쩌다, 히말라야 21
고산병 단상
같이 올라온 한국인 팀의 여성 한 분이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울상이다. 올라올 때부터 기운이 없고 어질어질하면서 머리가 아픈 걸 간신히 참고 올라왔다고 한다. 영락없는 고산병 증세다. 4,000m 가까이 올라왔으니 고산병이 올 만하다. 내일 체리고리를 오르기 위해 고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오전에 올라와 오후는 쉬기로 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고산병(altitude problem)은 말 그대로 높은 곳에 올라와서 생기는 것인데 의학적인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높이의 차이에 따른 기압 차, 공기 밀도에서 발생하며, 보통 3,000미터 이상 고도에 오르면 산소의 양이 부족하여 생기는데, 고도를 높일수록 숨이 가빠지며 소변이 많아지고 수면 중에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초기에는 두통, 두근거림, 식욕부진, 구토, 설사,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심한 경우 뇌에 손상을 주어 뇌부종이나 폐수종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보통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직 특별한 약도 없다. 여행객들은 비아그라나 다이아목스 같은 약을 가지고 다니지만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가장 확실한 예방 방법은 무리하게 걷지 말고, 3,000미터 이상에서는 하루에 고도를 500미터 이상을 올리지 않고 물을 자주 마시고 천천히 걷는 것이다.
고산병은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산을 잘 탄다든가 건강하다든가 하는 문제와도 관계가 없다. 나도 지난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때 두 번 이런 경험을 했다. 한 번은 푼힐 전망대에 가기 위해 묵은 고레파니에서 밤새 멀미 같은 증상이 왔다. 조금씩 방이 흔들리는 것 같더니 새벽닭이 울 때까지 천장이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로 올라가는 도중에 왔는데, 멀쩡하던 걸음이 갑자기 슬로모션이 되더니 잘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앉아 쉬었다, 걸었다 하며 천천히 아주 느리게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말초신경과 근육까지 산소가 잘 전달이 되지 않아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전혀 전조도 없이 생긴 일이라 예방약을 먹을 틈도 없었다. 어느 정도 높이에 오르기 전에 미리 약을 먹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데, 약에 대한 거부감 탓인지 굳이 그러지 않은 것이다. 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서는 옆방의 여자 한 분이 밤새 우는 통에 잠을 설친 적이 있는데, 아침에 식당에서 하는 소리를 들으니 두통으로 머리가 너무 아파 울었는데 울고 나면 두통이 좀 가라앉더라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울음 때문에 옆방에서 누군가 시달렸을 사람이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속으로 슬며시 웃으며 나는 함께 길을 걷는 도반으로서 기꺼이 하룻밤의 무례를 용서하기로 했다.
산이 높아질수록 고산병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8,000미터 고봉을 오른 사람들은 낮은 지대에서 겪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당한다. 환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피로와 산소 부족이 원인이다. 엄홍길은 시샤팡마 정상 직전 설동雪洞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수시로 잠에서 깨어났다. 추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었고, 사소한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하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환각이었는지 환청이었는지,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갔고, 식구들 틈에 끼어 흰쌀밥에 고기를 얹어 먹기도 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글에도 고산병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곰같이 무뚝뚝한 알프레드 드렉셀이 두통을 호소한다. 잠시 후 두통이 더 심해지자 캠프 2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6월 7일 드렉셀은 기력이 쇠잔해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워 버린다. 의사가 왔다. 처음에는 폐렴으로 진단했다가 다시 폐출혈로 진단한다. 포터들이 산소 호흡기를 가지고 급히 올라왔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죽은 것이다.” 사실 8,000m 고소에서 이런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고산병은 단순히 높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등산 습관이나 생활방식 하고도 관련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등산객들은 좀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산악회나 여행사 단체 트레킹이 많다 보니 일단 규모가 크다. 이들이 약 20명이라면 이들을 돕는 포터, 가이드, 쿡까지 합쳐 50여 명이 우르르 함께 몰려다닌다. 길을 전세 내듯 독차지한다거나 떠든다든가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대열을 유지고 보행을 맞추려다 보면 걸음이 빨라지고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단체 숙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음주나 잡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오는 숙면 방해 등등, 이런 것들이 고산병의 원인이 된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도 한몫한다. 포터나 가이드들은 계속해서 ‘비스탈리(천천히)’ ‘비스탈리’하고 외치는데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걷고, 또 빨리빨리 쉬고 일어난다. ‘나보다 못한 쟤도 가는데 나는 왜 못 가’하는 경쟁의식과 목표 중심주의적 사고도 한몫하는 것 같다. ‘고지가 바로 저긴 데 예서 말 수는 없다.’는 시조 한 대목의 효과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외운, 앞뒤는 다 잘리고 기억나는 이 한 마디. 친일 경력이 있는 시인의 시조 한 토막이 생각의 뿌리가 되고, 개발독재 시대의 신념이 되어 우리를 끌고 다닌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고산병이 산에서만 나타나겠는가? 인격이나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분수에 넘치는 높은 직위나 재산, 권력, 명예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책임질 수 없는 말로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높은 곳을 오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이상 신호나 유혹이 오면 걸음을 바로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즉각 고도를 낮춰 내려와야 한다. 자신을 너무 믿지 말고 목표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라도 올라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멈출 줄 아는 것이야말로 산에 오르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지혜다.
높은 산에서는/ 무거우니 많이 먹지 마라/ 자연에 뭉클 감동한다고/ 치기稚氣의 술을 마시지 마라/ 기름기 끼는 것을 먹지 말고/ 유난 떨며 자주 씻지 마라/ 사는 것이 살얼음 판이다/ 조심조심 생각하며 걸어라/ 메고 온 마음을 비우고/ 아픈 곳을 더 깊이 살펴라/ 높은 곳에 올라/ 무엇보다 깊이/ 제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라/ 사람이라고/ 사람의 편에만 서지 말라/ 온 생명이 함께 살아야 하느니라/ 자만한다면 산이 갚아 주리라 <고산 십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