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23

- 통곡의 벽, 망배단에서

by 전종호

벽은 닫힌 문이다 이런 식의 말은 하지 마라

인간의 역사는 쉼 없이 벽을 만들고

벽 안에서 착취에 안일, 평안의 열매를 먹고

전쟁의 못된 짓을 숨겨왔던 일임을 잊지 말라


광목천 빙 둘러 엉덩이를 까 용변을 보고

뚝딱 못 박은 판자 대기에 숨어 난폭한 욕망을 채우며

계급과 색깔의 벽으로 사람들을 갈라 치기 하고

휴전선을 세워 흔들리지 않는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었더냐


벽은 일시적 막힘이 아니라 강력한 차단이니

닫히면 벽이요 열리면 문이라는 이야기 따위

아름다운 말로 한가하게 속이지 말라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벽 하나로 숨긴 것이다


벽이란 환영이 아니라 손사래 치는 금 긋기

어린 병사들을 세워 손에 총을 쥐어주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

저쪽의 생각이 이쪽으로 스미지 못하게 하는 것


한때 젊은 날 저 강고한 벽을 들이받으며

막힘을 뚫어 보려는 무모사람들이 있었으나

머리 통 깨지고 상처 투성이에 온몸이 깨져

영혼이 갈가리 찢겼을 뿐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꽃을 높이 걸어 화려벽을 뒤에 둔 사람들과

앞에 벽을 두고 넘으려는 가련한 사람들이 있고

벽을 이용하여 만대의 영화를 누리려는 사람들과

분단의 가로막힘에 슬피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리하여 벽은 열리게 아니라 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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