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여행 칼럼〕 어쩌다, 히말라야 28

헛걸음은 없다

by 전종호

라마호텔에서 하루 묵고 내려오는 길에 갈림길을 만난다. 곧장 아래로 내려가면 카트만두로 향하는 하산 길이고 왼쪽으로는 코사인쿤드(4380m)로 가는 오르막길이다. 코사인쿤드는 힌두와 불교의 성지로 네팔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 인도 사람들도 찾아오는 순례 성지이다. 고행을 하면서 산을 오르고 드디어 호수에 도착하면 몸을 담금으로써 신성한 목욕과 푸자와 지금까지 걸으며 의존해온 지팡이를 신께 바친다. 여름에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힌두인과 불교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를 한다. 물론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은 없다고 한다.

겨울이니 가보았자 호수는 얼어 있을 것이고 가는 길도 험난하리라 예상되었지만, 올 때부터 예정했던 것이니 코사인쿤드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기로 한다. 방향을 바꾸기 전에 갈림길의 이정표를 꼼꼼히 살펴본다. 낡은 간판에 페인트는 벗겨지고 길 표시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눈에 띄는 것은 공식적인 안내보다 네임펜 같은 것으로 누군가 휘갈겨 써놓은 영어 낙서였다. ‘느린 것이 부드러운 것이고 부드러운 것이 빠른 것’이라고. 누군가 이 험한 산길을 걸으며 빨리 걷지 못하고 자꾸 뒤처지는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다짐이었으리라. 아니면 세상의 급한 물결을 피해 산길로 들어와 몸과 마음에 스스로 위로와 위안을 주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감 백배. 나에게도 위로를 주는 말이었다. 또 한쪽에 더 작은 글씨로 ‘사랑은 좋은 것이고 미움은 나쁜 것이다’라는 문장도 보인다. 이걸 쓴 사람은 사랑보다는 미움과 싸웠던 사람일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이어서 미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누군가, 무언가 미워할 대상이 극복되지 않아 속을 끓이며, 부대끼며 이 산길을 걸었을 것이고,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은 감정을 다독이며 자신을 위로하고 다짐하는 말로 이 문장을 여기에 써놓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아픈 사연을 안고 산다. 밝음만, 아니면 어두움만 안고 사는 사람은 없다. 밝았다, 어두웠다, 즐겁다, 슬펐다, 행복했다, 불행했다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제만 해도 체르고리에 올랐던 한국 부부 트레커들이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자 마음 조리고 기다리다가 그들의 랜턴 빛을 보자 금세 안도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그젯밤은 그들과 함께 한식 식사와 함께 행복하게 보냈고 그분들은 어제 아침 헬기로 카트만두로 떠났다.

내려오는 길은 쉽고 빨랐다, 올라갈 때 이틀 걸리던 길을 내려올 때는 하루 만에 왔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주변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내려왔다. 마을 골목의 마니차와 마니월도 살펴보면서 이들의 신앙과 종교에 대해서도 더 많이 숙고하게 되었다. 하늘뿐인 높고 깊은 산속에서 바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신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만트라 즉 주문呪文을 외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주 롯지에 들려 밀크티를 마시고 주민들과 대화했다. 문두에서 야크 젖을 파는 할아버지는 야크 젖 한 잔을 더 줄 테니 내 선 글라스를 달라고 했다. 설맹 때문에 벌겋게 변한 눈을 보여주면서 선글라스가 없으면 자기 눈이 멀지도 모른다고 아예 강요하다시피 졸라댄다. 곧장 내려가는 길이었다면 주고 왔을 텐데, 아직 여행 일정이 남아있어 선글라스를 줄 수 없다고 하자 크게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동정심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쉬고 내려오다가 도중에 산을 오르는 두 한국인 남자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 분은 내 나이 또래의 교사이고 또 한 분은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포터도 없이 자기 짐을 직접 메고 올라오는 두 분이 배낭이 크고 무겁게 보였다. 내가 점심을 시킨 사이 두 분은 부엌에서 직접 점심을 해 드신다. 물론 간편식이다.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몇 년째 교감 승진 발령이 나지 않아 속 끓이다 겨울방학이 되자 짐을 챙겨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호주에 유학 갔다가 현지에서 취직까지 했는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저것 생각거리가 많아서 왔다는 것은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그래, 사연 없는 사람 하나도 없고 고민과 슬픔이 없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 거야 하는 생각이 나를 위로한다. 영웅적 장면이라도 뒤에 가려진 이면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산은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산악가 엄홍길이 병중에 있는 아버지를 병원에 두고 예정되어 있는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정상적인 직업인으로서 돈 버는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가 이혼을 앞두고 낭가파르바트를 오르고 내리며 괴로워하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때의 괴로움과 외로움은 검은 고독으로 표현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세계적인 영웅적 등산가들이 산 아래에서는 이혼 등의 가정사와 사업 등의 문제로 번민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높은 산에서 자일 파트너로서의 우정이 산 아래서는 배신과 갈등을 동반하는 예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등산가들은 산 아래서의 고민과 갈등을 산 위에서 해소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산상이 예배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두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섬머싯 몸의 표현을 빌리면, 달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6펜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달의 세계 속에서만 살거나 6펜스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이고 본원적인 세계와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세계, 또는 천국과 지옥 두 세계의 거주민이다. 성공 속에서만 살거나 실패 속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인생에서 헛걸음은 없다. 성공과 기쁨은 그것대로, 실패와 고난은 또 그것대로 의미를 가진다. 실패와 고난은 헛되지 않고 사랑과 기쁨의 밑거름이 된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의 명언이 맞다면, 눈물은 사랑은 키우는 자양분이다. 단순하게 살면 삶이 길을 보여줄 것이다. 산은 단순함의 세계다.


신들의 호수 코사인쿤드 가는/ 성지순례 이정표에 쓰여있다// 느린 것이 부드러운 것이고/ 부드러운 것이 빠른 것이다/ 누군가 휘갈겨 쓴/ 짧고 명쾌한 영어 한마디/고봉 설산을 올랐다 내려가는 길/ 다시 높은 산정호수를 올라야 하는 /자신을 달래는 위로였으리라//글 옆에 누군가 또 써 놓은/ 사랑은 좋은 것이고/ 미움은 어리석은 것이다/ 마음 부대끼며 걸었던 흔적/ 무심한 듯 낙서한 줄/ 한발 비켜서 보면/ 삶도 진리도 단순한 것이니// 무거운 짐을 메고/ 구름처럼 떠도는 벗이여/ 서두르지 말게/ 새처럼 뼈를 비우고/ 바람 따라 먼 길 잘 가시게 <산중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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