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을 17
- 딸에게서 배운다 : 성미산 마을, 서울
딸은 성미산 마을에서 산다. 성미산마을은 행정동 명이 아니라 66미터의 성미산을 중심으로 마포구 성산동, 망원동, 서교동 일대에서 흩어져 살면서 느슨하게 결합된 마을 이름이다. 성미산 마을은 원래는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지금은 성미산학교(대안학교), 생협, 마을회관, 개똥이네 놀이터, 출판사들이 들어와 있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집을 함께 짓고 모여 사는 소행주(소통이 있는 행복한 주택)가 일곱인가 여덟 채인가 들어섰다.
딸은 그 공동체 주택에 살고 있다. 내가 딸을 키울 때 너무나 이사를 자주 다녀서 딸은 지역의 뿌리 없이 자랐다. 동네 친구가 없었고, 어쩌다 친구를 만나도 대등한 관계에서 사귀기가 어려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땐가 보니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고 학교 가는 것을 보았다. 이른바 가방 모찌였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한 부모의 죗값을 아이가 치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가끔 찌른다.
그래서 그랬는지 딸은 제 딸을 지금 공동체 주택에서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과 함께 키운다. 젊은이들은 똑똑하다. 걱정할 것이 하나 없다. 어느 때 가보면 손녀는 다른 집에 가 있고, 다른 집 아이들이 딸 집에 와서 논다. 집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집은 언제나 오픈되고 아이들의 방문은 언제나 오케이다. 집에 일이 있을 때는 문고리에 인형을 걸어두면 아이들이 알아서 오가지 않는다. 어른 동네 주민들과는 별칭으로 부른다. 성미산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이웃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아직 공동육아 어린이집(터전이라고 부름)에 다니는 손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뒷산 성미산에 하루에 한 번은 꼭 간다. 서울 아이답지 않게 나무와 꽃 이름도 많이 알고 봄이면 꽃잎이나 나뭇잎을 따서 씹기도 한다. 분리된 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살기를 배운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젊은이들의 과제라면 60대가 청년 취급받는 거의 노인들의 나라인 농촌에서는 어울려 잘
늙어가는, 그래서 품격 있고 고귀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딸의 공동체 주택 상량식을 할 때 이들의 평안을 빌면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대들보를 올리며
성미산 오르막 빛 좋은 자리
기초에 기둥을 박고 다섯 층을 높이어
오늘 대들보를 올리니 필부필녀
여섯 가구 스물네 목숨의 아름다운 집이라
집이란 모름지기
뜨거운 피를 나눈 식구들이
정직한 밥으로 몸을 덥혀 숨을 나누며
같이 걸을까 삶의 오르막
평생의 뜻을 함께 열어가는 곳이니
걸어온 길 피곤한 몸을 누이고
속상할 때마다 토닥토닥
마음 다스리는 어미 아비 있어
어여쁜 새끼들 먹이고 키울 수 있어라
모여 함께 사는 일이란
오로지 머리를 숙이고 남을 받드는 일이며
남의 눈에 작은 가시가 아니라
내 눈동자의 들보를 돌아보고
홀로 또 함께 활짝
꽃 피우는 것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붕 아래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골목 바람의 두런거림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과 손잡고 별을 세면서
조는 듯 반짝이는 별빛에 감탄하고
새와 벌레들의 작은 노래를 듣는 일이다
길 위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정처 없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 환대의 그늘이 되고
보듬어 안에서 밖으로 온기를 나눠
활활 타오르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