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눌노리 34

- 마을 정원

by 전종호

정원은 집 안에 들인 자연이다. 집이 자연 속에 깃들 때는 집에 특별히 정원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서양에서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 이후이다. 산업화 이후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도시는 삭막해지기 시작했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여유 있는 사람은 아웃도어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알프스 등반을 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부자들은 집 안에 정원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게 점점 커지더니 빈민들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쳐두었던 담장마저 허물게 되었던 것이다.


분리적이고 폐쇄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택형태가 된 우리나라에서 정원 문제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의 조경 정도를 의미하였고 마당을 가진 저택에서는 현대적 건축을 보충하기 위한 자연적 소재로서 정원이 기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원을 조성하기 위한 재료들도 결국 산이나 들에서 자연 상태의 암석이나 나무들을 옮겨 오는 것이고 그 중요한 기능도 집 안의 조경미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자연미라든가 이웃집 간의 균형미 같은 것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대리 자연의 개념은 그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 마을 정원에 주목을 하기 시작한 것은 박원순 시장 재직 때부터였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서울시 전체를 산림으로 조성하면 서울시에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약 2%를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심어진 나무에서의 탄소 흡수 분과 교외의 숲으로의 이동을 줄임으로써 절감할 수 있는 총량을 합친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내 능력의 밖의 일이어서 관심도 없지만, 서울시에서 ‘내 집 정원’, ‘골목 정원’, ‘스마트팜’, ‘옥상정원’, ‘도시농업’ 등의 아이디어는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방에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눌노리에서는 특별히 마을에 정원을 가꿀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워낙에 전체 부지가 작고 개인 주택도 좁은 입지에 들어서는 마을이라 따로 정원을 조성할 만한 여유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낸 것이 <최소의 사유, 최대의 공유>라는 개념이었다. 일단 집집마다 펜스를 치지 않는다. 집은 도로에서 2m씩 안쪽으로 들여 짓는다. 그렇게 확보되는 공간이 도로의 너비 플러스 양쪽 2m씩 4m가 확보된다. 마을의 중앙도로를 따라 수로를 개설하고 그 위로 포도나무 같은 넝쿨식물을 심는다. 조경을 하기 위한 나무 값도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포도나무는 비싼 조경수 비용을 절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유실수이기 때문에 판매할 것은 아니지만 가정에서 먹을 만큼의 양은 제공해 줄 것이고, 여름에는 길 위로 그늘을 조성해 주기 때문에 더위를 식혀주고 지표면 온도를 낮추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이 정도의 마을 정원이면 각자 집안 마당의 정원과 함께, 우리 마을이 조성됨으로써 발생하는 탄소의 총량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아무튼 탄소의 배출량은 가급적 줄이고,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흡수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목원 등 숲의 방문 빈도가 많아졌다고 한다. 숲에서의 힐링은 고무할 만 하지만 차량 이동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문제도 함께 증대시키고 있다. 잘 가꾼 마을정원은 이동의 가능성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이밖에도 마을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쓰레기 등 자원 순환의 문제, 기차역이나 도시 상권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동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각자의 자동차를 이용한 이동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자동차 셰어의 방법 등 로컬 모빌리티의 문제는 더 연구해야 할 주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다 눌노리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