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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Oct 02. 2022

좌판에 시집을 깔고

시장 좌판에 깔고 사고파는 것은 반드시

쌀이나 보리 콩 같은  곡식이나 아침 녁에 솎아 

손 본 열무나 상추 같은 푸성귀일 필요는 없다


햇빛장 좌대에 시집을 내어 놓고 파는 오늘 

아침에 팔다 남은 시집 권 수를  헤아리며  

후미진 시장 바닥에서 좌판을 벌이고

마을에서 나온 나락들을 낚아채듯 받아 팔아

어린 자식들을 먹였던 젊은 어머니를 생각한다


젊은 아낙에게 분명코 막장이었을 시장 바닥은

어린것들의 밥이 되고 몸이 되고 공부가 되어

이만큼 다 큰 어른으로 자라게 하였으니

결국 우리 사 남매는 그 시장 바닥의

차가움과 막막함과 캄캄함에서 자란 것이나  


오늘 이 자리에 앉아 내게 밥도 되지 못하고

남의 어두움과 두려움에 한 줄기 빛도 되지 못하는

시 몇 줄 모은 시집을 들고 앉아 있는

뻔뻔함은 정녕 어디서 온 것이더냐


시집 한 권 사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기어들어가는 부끄러움을 들여다보며

새끼들의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이 장 저 장 쌀 몇 되 몇 말에 이 소리 저 소리

들으며 떠돌던 고단한 목소리를 생각하지만


검은 머리가 희고 허리가 굽고 눈이 침침하도록

그 발길 멈추지 않아 몇 목숨을 살려냈음에도

남 앞에 소리 내어 시집 한 권 파는 것이 부끄러운 

너는 남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시 몇 편이나 썼느냐

책망하는 소리에 울고 싶도록 부끄럽구나


**<헤이리 햇빛장에서>

따가운 가을 하늘 아래 햇빛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장場을 열었다. 

햇빛장! 삶의 마당이며 물물심심物物心心의  장터다. 

다른 분들은 각자의 생산품을, 나는 평화마을 기금 조성을 위해 

나의 생산물인 시집을 팔고 있다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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