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시작되면서 특별히 다른 일이 없으면 현장에 출근한다. 이틀이나 3일에 한 번 정도. 무슨 감독 개념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내 집을 짓는다는 경이로운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40년 가까이 학교에 출근하면서 느끼던 일의 열정과는 좀 다른 현장성, 몸 노동을 통한 활기를 함께 느끼는 것이 좋다. 설계를 하면서 건축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설계도면이 되고 땅 위에서 구현된 현실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는 상당히 다른 즐거움을 준다. 지금까지 줄곧 말의 집을 지었다면, 지금은 집의 말을, 노동의 말을 글로 쓰는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설계 도면을 완성하기 위해 두 분 건축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건축 시공하는 빌더들과 약 4개월을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토목 시공하는 분들은 두 주간 자기 일을 하고 빠지고 목조 팀들이 들어왔다. 토목 팀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느낀 첫인상은 밝음과 당당함이었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노가다'의 찌듦과 패배감이 없었다. 한 때 노가다 십장으로 집을 떠나 멀리 떠돌던 내 아버지의 찌들고 심각한 피로에 젖은 얼굴의 흔적이 없었다. 멀리 있던 아내가 손 까불러 가보니 스피커를 가리킨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일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밝고 경쾌한 현장이 좋다. 이제 일을 배우기 시작한 6개월, 1년짜리 늙은 루키들도 있다. 이들의 일일 임금(일당)은 매우 사실상 높은 편이다.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악덕업자에게 임금을 떼일 염려도 없도 고용관계도 경직되지 않아서 그만큼 기술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기 때문이지 모르겠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퇴근할 때의 현장의 뒤처리 또한 깔끔하다.
이들이 퇴근하고 간 자리에 서 있다 보니 끼륵끼륵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운 소리에 놀라 하늘을 보니 기러기들이 퇴근하는 중이다. 아침에 떼를 지어 파평산 쪽 들판 논밭으로 출근했던 기러기들이 대열을 이루어 퇴근하고 있다. 몇십 마리씩 날기도 하고 수백 마리가 함께 날기도 한다. 며칠 동안 어쩌다 관찰을 하다 보니 기러기의 이동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룰에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순간포착을 위해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 기러기 떼는 저 멀리 날아가고 카메라에는 대열의 꼬리만 잡힌다. 끼르륵 대는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하는 노래가 자동으로 나온다. 박목월이 시를 붙인 <이별의 노래>다. 하늘 구만리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시베리아나 만주로 날아가는 봄 기러기일 텐데, 그 높이에서는 우는 소리는 땅에서 들리지도 않을 텐데, 떠나는 기러기들은 가을 기러기가 아니라 봄 기러기일 텐데,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노랫말의 사실 관계가 틀린 것임에는 확실하구나. 노래 부르다 별 생각을 다. 죽은 이동원은 막 어두워지는 이 시간을 막막한 시간이라 노래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