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눌노리 85

- 김여사의 현장단상 : 목수

by 전종호

단열 공사를 하는 현장에 갔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춥고, 게다가 진눈깨비가 바람과 함께 사선으로 내리쳐 실외 시야까지 불투명한 볼썽사나운 날씨였다. 단열재로 실내는 가득 찼다. 아직 실내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불을 켤 수 없다. 실외가 어둑한데 실내는 어떻겠는가? 어둑한 곳에서 꽉 들어찬 단열재를 가지고 나의 인사에 곁눈 줄 틈도 없이 일하시는 분들을 본다. 어둑한 각 공간에 부피 큰 단열재(글래스울)와 전력을 다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쌀가루 같은 눈이 내리던 어제, 옆집 지붕 웜루프 작업으로 박공의 사선에 맞춰 작업자의 몸이 사선으로 허공에 기울어진 모습의 아찔함. 이들의 이런 전력 노고를 보고 말았기에 이 공간에서 살 때 그런 노고를 잊지 못할 것이다. 사방 어둑하고 어지럽혀진 실내에 도면이 펼쳐져 있고, 그것을 다시 나름 숙지하여 빼곡히 노트한 판지를 보았다. 벽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이러저러한 표시가 있다. 종이로 가공되기 전 나무를 종이처럼 사용하는 직업이구나를 생각한다. 마치 집이 하나의 책이고 책 속에 중요한 것을 표시하고 메모하는 모습과 같다. 서서, 무릎을 굽히며 자세를 바꿔가는 노동 현장에 엄숙함이 묻어난다. 분주히 작업하는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동안 개방된 실외에서 음악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보았던 평소 나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전달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목수의 직업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들이 자재에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그런 것을 느낀 경우가 있다. 어느 날 벽돌이 운반되고 다음날부터 조적을 하기로 예정되었는데 눈 소식이 있어 미루어졌다. 이 소식을 건축주에게 이렇게 전했다. ‘작업을 다 마치고 오늘 입고된 시멘트와 벽돌 파렛트를 비닐로 다 보양하였습니다’ 시멘트와 벽돌을 마치 생명체를 다루듯 하는 표현, ‘보양’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방통(방바닥 통미장)을 마친 후 그것이 잘 마르도록 하는 작업 ‘양생’도 그렇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이 생명을 다루는 작업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물체를 다루는 각종 각양의 직업이 이렇다면 이 세상에 사기와 부실 공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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