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닭 한 마리가 죽고 닭장 주변으로 울타리를 쳤다. 닭 4마리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울타리를 쳐서 닭의 이동공간을 확장시켜 준 것이다. 닭장을 가운데 두고 사면에 말뚝을 박고 망을 둘러주었다, 지붕에 그늘막도 설치했다. 주변에 두릅나무도 심고 맨드라미와 골드메리와 수국도 심었다. 낮에는 닭들이 집을 나와 마당에서 놀고 밤에는 집에 들어가 잠을 잔다. 죽은 닭 대신에 비슷한 칼러, 비슷한 종의 닭 한 마리를 가져와 다시 5마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동네 주민들의 시비는 계속되었다. 지나가는 한 노인 왈, ‘닭장을 지으려면 사람 키보다 높이 지어야 하는 겨.’ 지나 보니 옳으신 말씀이다. 닭이야 집 높이가 문제가 안 되지만 들어가 청소도 하고 알도 꺼내야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높이가 문제가 된다. 등을 구부리고 다니려면 잠깐이어도 몹시 불편하다. 울타리 높이도 당연히 지적 대상이다. 닭이 날라가겠다, 개나 고양이가 들어갈 수 있다, 지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지적이나 우리들의 걱정과는 관계없이, 어미 닭 한 마리와 병아리 세 마리는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살았다. 새로 온 검은 닭은 왕따로 따로 놀았다. 아무튼 닭들의 걸음걸이와 색깔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큰 닭은 달걀도 낳기 시작했다. 알통에서 아직 온기가 있는 달걀을 꺼낸 손의 감촉은 따뜻했고 무어라 말하기 힘든 특별함이 있었다. 이것저것 먹여보면서 닭이 좋아하는 것들 파악하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먹어도 알을 남겼고 수박을 먹고도 다 먹지 않고 살을 남긴 채 닭에게 주었다. 배춧잎이나 상추잎도 얘들이 좋아하는 품목이었다. 피망을 철사에 매달아 주니 돌려가면서 뜯어 먹는다. 쌀겨를 먹던 어린 병아리들도 이제 낱알을 먹기 시작했다.
닭장과 닭을 지켜보는 우리 마음은 평온해져 갔으나 불행하게도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부엌에 있던 아내는 갑자기 날카롭게 꼬꼬댁거리는 닭들의 단말마 같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부엌 창문을 넘어서 보니 개 두 마리가 닭을 노려보며 닭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치며 쫓아갔다. 갑자기 들리는 사람 소리에 개들이 잠깐 주춤하는 듯하더니 닭장 울타리를 휙 하고 날아 닭 한 마리를 물고 비호처럼 사라졌다. 더구나 물려간 것은 아내가 제일 좋아하던 원픽이었다. 우아한 칼러와 자태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쫓아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이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나머지 닭들은 닭장 구석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고, 아내는 돌부리에 넘어져 얼굴을 갈았다.
생전 처음 닭을 키우면서 느꼈던 아내의 환희는 갑자기 사라지고 무거운 침묵이 오래 흘렀다. 이동식 닭장을 만들자는 아내의 제안을 말없이 뭉갠 나에게 모든 원망이 돌아왔다. 내가 외출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닭을 들여온 지 보름. 윗마을 공장에서 키우는 진돗개 소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