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민들이 추가 비용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업자를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공사의 주도권을 업자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 터무니없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생각, 그럼으로써 돈 내고 호구 소리 듣는 멍청한 갑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말이 통하는 업자, 공사 과정을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업자를 찾아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착한 호구가 되지 않기는 정말 어려웠다. 왜냐고? 적당한 업자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다른 업자가 일단 손댄 것은 맡지 않는 것이 토목업자들의 오랜 불문율이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담합이랄까? 종합건설(종건) 면허 업체가 맡기에는 우리 공사가 규모가 작고, 동네 업자가 하기에는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는 2∽3억 정도의 규모이다 보니, 이런 공사를 할 수 있는 토목(단종) 면허 업체가 지역에서 뻔한 것이어서 평소 서로 잘 알고 있는 업체끼리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관행이 굳어진 것이다. 우리가 배제하기로 한 업자는 이러한 사정을 훤히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우리가 백기 투항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문제가 되었던 성토는 따로 하지 않고 토목작업과 병행하기로 하고 우리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토목업자를 찾아 나서보기로 했다. 회사나 기관에서 하는 정식 입찰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알음알음 6개 업체가 왔고, 몇 업체는 공사가 너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 견적을 내도 선정될 확률이 낮다는 생각에서 포기하고 나머지 세 업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마을의 마스터플래너가 참여 희망업체를 현장에 초청해서 토목설계의 개요와 공사의 특이사항과 주의점 등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고, 토목 설계도를 보고 2주일의 시간을 주고 견적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토목설계의 최대의 문제점은 역구배 문제였다. 우리 건축 부지가 아래쪽과 위쪽이 약 2m 정도가 경사가 있고 시청의 허가 과정에서 오수관과 우수관이 아래쪽이 아니라 부지 위쪽으로 빼내도록 되어 있어 역구배가 발생했던 것이다. 참여업체는 이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시에서 이미 허가한 토목설계도를 변경할 수는 없어서 이것을 수용하는 전제에서 견적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런 설계를 납득하지 못하고 설계업자에게 수정을 요구했지만, 주변 땅이 국가 소유로 되어 있어서 그쪽으로는 관을 뺄 수 없다는 시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토목설계사의 설명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결과는 우리가 처음부터 배제하려는 업체 말고는 아무도 견적을 내지 못했다. 역구배로 했을 경우의 비용 문제와 낙찰 가능성을 따져서 견적을 내지 않겠다는 업체가 한 군데 있었고, 견적을 내려고 문의만 여러 번 하고 결국 견적을 내지 못한 업체도 있었다.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이 도면을 읽고 견적을 낼 만한 직원을 따로 두지 못하고 하청으로 견적을 내게 했는데 이 사람이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도면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나 보던 건설사나 토목회사의 하청, 재하청 구조의 실상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현실이 이러하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배제하려던 업체에게 그냥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숙의 끝에 다시 한번 입찰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다시 다른 아는 업체를 수배했고 세 곳의 업체에서 견적을 냈다. 견적 결과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도면을 읽지 못해 엉뚱한 견적을 내는 업체가 또 나왔다. 시청 공무원과 협상해서 자기들이 역구배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견적을 내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업체도 있었다.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우리 측 건축사가 세 업자를 불러서 다시 설명하고 다시 견적을 받았다.
견적 금액, 회사 실적, 업무 추진의 신빙성, 회사에 대한 신뢰도와 평판, 업체가 현재 시공하는 현장 방문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한 업체와 계약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헤이리 등에서 여러 채의 큰 건물을 지었고, 건축주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은 업체였다. 어쩐 일인지 역구배 문제도 시청과 쉽게 해결을 보아 오수관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새로 잡았다.
성토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면 벌써 끝났을 시점에 두어 달을 끌었던 토목공사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공사 착공을 하늘에 고하고 마을 주민들께 알리기 위하여 마을의 선주민들을 모시고 안전기원제(고사)도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나 무정하게도 안전기원제를 드린 그다음 날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8월 중순까지 비는 심하게 내렸다. 비가 그치고도 땅이 질어서 금방 작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비 때문에 또 한 달의 시간이 허비되었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도 우리의 답답한 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대책 없이 내리는 장대비 앞에 어마무시한 민원이 또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하염없이 빗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