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기대했던 마흔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16
질문
30세에 그렸던 이상적인 40세의 모습과, 지금 느끼는 현실의 40세는 각각의 장점과 한계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두 세계를 조화롭게 통합하려면 지금 어떤 선택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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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었을 때, 나는 마흔의 모습을 깊게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겠지” 정도의 막연함이었다.
마치 40세는 언젠가 먼 훗날에나 오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먼 훗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그리고 막연한 상상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훨씬 나다운 모습으로.
지금의 나, 싱글이고, 아이가 없고, 직업과 사는 도시조차 스스로 선택해 바꿔가며 살고 있다.
세상이 그려준 40세의 모습과는 꽤 멀지만,
나는 시간, 에너지, 선택권, 방향성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
이것이 지금 현실의 40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나는 지난 10년을 온전히 나 자신을 탐구하는 데 썼다.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고, 다듬고, 재정의하고, 재구조화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만큼 자기 이해도와 자기 인식 수준이 상당히 깊다고 느낀다.
만약 지금 인연이 연결되어 결혼을 한다면
서른 살의 내가 꾸렸을 가정보다 훨씬 건강하고, 안정적이고, 성숙한 공간이 될 거라는 것을.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이것이 현실의 40세가 가진 세계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한계는 무엇인가?
사실 많지 않다.
가장 솔직하게 한계를 인정하자면 신체적인 변화 정도이다.
30세에 비해 회복 속도나 근육량 증가는 확실히 느리다. 여성으로서 임신 가능 시기를 의식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운동, 식습관, 체력 관리를 통해 신체나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폐경이 온 뒤가 아니라면 늦은 나이라 해도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다만, 몸을 챙기며 시간을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이다.
그 외의 것들 중에서
정신, 가능성, 인간적 능력, 새로운 시작 등
나는 어느 것에서도 한계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30세에 상상했던 40세의 세계와
현실의 40세의 세계를 통합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어떤 미래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축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30세의 나는 외부 세계의 안정을 꿈꿨다.
지금의 나는 내부 세계의 정렬을 선택한다.
나의 본질과 맞닿은 방향으로 살아가는가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영혼과 현실이 균형을 이루는가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축이다.
그리고 통합을 위한 선택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면은 사랑과 정렬을 기준으로,
신체는 건강과 회복력으로 보완하면서 살아가기.
관계와 사랑을 부정하지 않고,
임신의 가능성을 닫지도 않고,
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소모하지도 않는 것.
남들이 기대했던 40세가 아니라
내가 살아보고 싶은 40세를 중심에 둔 채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
마흔이 온다는 것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서른의 나가 상상했던 마흔보다
지금 현실의 내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시간순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나이를 먹어서 스며든 현실이 아니라,
선택과 의식과 성장으로 만들어낸 나의 40세.
나는 원하는 나의 방향으로
나의 40세라는 세계를 직접 창조해가고 있다.
조급할 필요도, 늦었다고 자책할 이유도 없다는 뜻.
내가 배울 준비가 되었을 때 배움이 왔고,
내가 사랑할 준비가 되었을 때 사랑이 왔고,
내가 나답게 살 준비가 되었을 때 삶이 달라졌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영혼은 타이밍을 알고 있다.
지금 나는 그 통합을 향해 걷는 중이다.
지금 이 나이의 나로서 가장 진실한 방식으로.
끝까지 나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 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증거처럼.
오늘의 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앞으로의 40대에서도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을
계속 선택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