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경청과 있는 그대로 보기에서 시작된다.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1
질문
지금까지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은 무엇이고, 그 기억을 통해 당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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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한 기억이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앞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7남 2녀, 아홉 남매 중 셋째인 아버지를 둔 대가족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고시원을 운영하느라 바빴고, 돌이 지나자마자 나는 조부모님 손에 맡겨졌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어린 시절, 그때부터 이미 내 마음 한구석에 ‘나는 환영받지 못하고 버려진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조부모님 집에는 주말이나 방학, 심지어 방과 후 평일에도 늘 사촌들이 가득했다. 나보다 6살 많은 동갑내기 사촌오빠 5명, 나와 또래인 남자 사촌 1명, 그리고 그 남동생의 여동생 1명. 이 구조 속에서 나는 정확히 끼지도 못하고, 존중도 받지 못하는 위치였다.
남자 사촌들은 서로 뭉쳐 잘 놀았다.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 사촌은 끼워주고, 그 아이의 여동생도 챙겨주고 예뻐해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만 쏙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이거 심부름 좀 해와”라고 불렀는데, 난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그것에 응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이유를 몰랐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왜 나만 빼는 거지?”
설명은 없었고, 무시당한다는 감각만 또렷하게 감지하는 그저 어린아이였다.
잊을 수 없는 밤이 있다.
늦은 시간, 사촌오빠들이 속닥이며 오락실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이불속에서 자는 척했다.
내가 잠들면 나를 두고 몰래 뛰어나가려는 대화를 들었다.
오빠들은 내가 자는 줄 알고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곧장 뒤따라 뛰어갔다. 새벽의 골목길을, 무서움을 삼키며, 간신히 따라가면서.
그러나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에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며 혼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나는 왜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그 믿음은 어린 나를 오래 잡아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사람이 왔다.
나는 지금도 그녀를 “부산 작은엄마(부산 출신이고 대가족이라 가족들은 구분을 위해 그렇게 불렀다)”라고 부른다.
그녀는 처음으로 내게 있어 내 말을 무시하거나 끊지 않았고, 판단하지 않았고, 한 아이의 이야기를 어른과 동등하게 들어주시는 인자한 분이었다.
나는 어렸음에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조언이나 훈육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태도라는 걸.
“같이 가자”라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의 온기가
외톨이였던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기운을 느끼면 단번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반대로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 앞에서는 가장 깊이 마음을 연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가장 아프게 결핍했던 것이
바로 내가 가장 주고 싶은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존재 자체를 존중해 주는 사람.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람.
오늘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사랑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실천하며 살고자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조언이 아니라 경청이고,
도움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해 주는 태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