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36
질문
가장 가까운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배웠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 인생에서 가까웠던 관계들이 겪은 변화,
그리고 대대적인 관계의 물갈이였다.
돌아보면 나는 늘
어떤 학교에 있었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그 관계들이 한꺼번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오래 지냈던 친구들과는
어느새 연락을 하지 않는, 단절된 사이가 되었고,
간호대학에 진학하고 미국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며 맺었던 인연들 역시 뉴욕으로 이민 간 이후 하나같이 갈등을 계기로 끊어졌다.
영성 공부를 시작하며 만났던 스승님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가르침이나 누군가를 중심에 두기보다,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내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본질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그 관계들 또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때의 감각은
관계가 정리되었다기보다,
삶에서 무언가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짧았지만 더 깊었던 인연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관계가 거의 청산되다시피 한 후에 만난 사람들과의 연결은 전혀 달랐다.
뉴욕에 이민 와 다니던 명상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진심으로 듣고 싶었던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
관계의 시간은 짧았지만
감정적 거리는 오히려 더 가까웠고,
훨씬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그들은 내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역할도, 과거도, 이해관계도 없이
그저 내 선택으로 들어간 공간에서 만난 인연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했다
그렇다면, 그 사이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예전의 나는
같은 환경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관계를 대하는 기준 또한 바뀌었다.
외부의 기준보다
내가 어떤 감각으로 이 사람 곁에 있는지를 더 신뢰하게 되었고, 함께 있어도 나를 잃게 되는 관계보다
짧더라도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제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축소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관계는 애써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를 때
가장 진실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곁에 둘 것인가
그래서 이제는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두고 싶은지가 분명해졌다.
이익이나 필요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만나고 나면 내가 더 충만해지는 사람.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 싶어지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이
부담 없이 흐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보내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 보자면,
가장 가까운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이다.
관계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변해가는 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내가 스스로에게
더 정직해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