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참았을까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나의 최악의 모습을 끌어내는가?
그리고 그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어떤 문제를 비추는가?
2024년 겨울, 뉴욕의 한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던 시기의 이야기다.
그 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 있는 구조였고,
간호사 두 명이 함께 커버하는 시스템이었다.
함께 일하던 정규 간호사가 출산 휴가를 가게 되면서
파트타임 간호사들이 수시로 교체되었다.
사람이 매번 바뀔 때마다 적응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나는
한 간호사가 비교적 장기로 근무하게 된다는 말에 속으로 안도했다.
그 안도가, 내가 한 달간 겪게 될 가장 큰 시험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첫인상부터 느낌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서 자기소개를 할 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름을 대충 발음해서 못 들었다. 내 기준에서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제대로 이름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스펠을 써달라고 했지만
내가 알려달라고 3번이나 말하고 나서는 포기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그녀가 쓴 기록지를 확인하고서 알게 됐다.
게다가 그녀는 집이 뉴욕시티에서 2시간 떨어진 곳에 있어 메일 왕복 운전을
4 시간 해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겠다며 라운지에 갔다오겠다해서
그렇게 하라고 나는 배려를 해줬건만 그녀는 그것이 루틴이 되어서
20이 30이 되고 30이 40분이 되어서 나중에는 8시 출근인데 9시가 다 되어서
근무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 나의 배려를 철저히 이용하는 그녀에게 경계를 설정하고
더는 그렇게 나를 이용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난 이것도 묵인해 주며
그녀를 혐오하기만 했다.
업무 중에도 늘 휴대폰에 몰두하거나 통화 중이라며
아파서 간호사실로 오는 학생을 돌보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처음엔 급한 일인가 싶어 넘겼다.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되고 나서는 내가 그녀의 상사도 아닌지라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참 애매했다.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은 착한 사람 패턴이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곧 그 배려가 당연함으로 변했고 그녀는 대놓고 일을 넘겼다.
아이들이 오면 나는 혼자 바쁜 와중에 그녀는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했어야 했는데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또 참았다.
내 감정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행동했다.
차분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폭발하는 방식으로.
나는 아픈 한 아이 한 명을 내가 맡고 다음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여전히 휴대폰을 보고 있는 그녀를 가리키며 저 간호사가 너 돌봐줄 거야 하고 넘겼다.
감정적으로 말없이 경계를 세웠다.
그러자 그녀는 그다음 아이가 문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가리키며 “저 간호사에게 가.”라고 말했다.
유치하지만 나랑 똑같이 행동했다.
아, 내가 감정적으로 긁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대할 때도 자기가 전화를 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장면을 보고도 나는 윗선에 알리지 못했다. 알리면 사실 바로 잘리게 분명하니
내가 그것을 실행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어차피 임시 근무 자니까 곧 가는데 뭐 하면서
또 참아 넘겼다.
결정적인 사건은 전교 직원회의였다.
회의 공지가 내 메일로만 와 그녀에게 캡처해 전달했다.
모두가 참석하라는 공지가 사실 인트라넷 메일이 있는 나에게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고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이 사실을 전달한 내용이 그녀의 분노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다음 날 그녀는 물론 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출근도 늘 그렇듯 회의가 끝났음에도
그녀는 간호사실에 없었다.
내가 “오늘 미팅 안 오고, 어디 갔었어?”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폭발했다.
아마 그녀가 한 말을 미뤄 봤을 때 내가 그녀를 추궁하게 들렸었나 보다.
“넌 내 상사도 아니고 교장도 아니다.
그런데 네가 뭔데 내 일정을 체크하느냐.
너 그거 알아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너 조울증이야? 정신병자지?
사람을 컨트롤하고 조종하려 들지 마.”
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녀가 나에게 퍼붓기에 기가 막혔다.
그녀의 화를 받지 않는 내공이 없었다.
분노가 내 안 속으로 들어와서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려 들었다.
하지만 내 말을 끊고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순간 더 이상 이 관계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교장선생님이 부재한 상황이라 교감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그녀는 다음 날부터 근무하지 않게 되었다.
이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수업 중 하나였다.
내 최악의 모습을 끌어낸 것은 사실 그녀가 아니라,
경계를 세우지 못하고 참고 견디던 나의 패턴이었다.
갈등을 두려워해 침묵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타인의 감정을 과도하게 읽으며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습관.
그것이 내 안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었다.
이건 무례한 동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적절한 때에 지키지 못한 결과다.
그 사건을 지나며 나는
나 자신의 패턴을 정확히 보게 되었다.
내 신경계는 위협적인 사람 앞에서
자동으로 이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관계가 나빠질 거야.”
“조금만 더 참으면, 나만 참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
“상황이 애매해지는 것은 싫으니 내가 더 맞추자.”
내 무의식은 경계를 세우면 위험하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불쾌함을 느낄 때마다 자기 보호보다 관계 유지를
먼저 선택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는 늘 같았다.
불편함을 삼키고,
분노가 쌓이고,
임계점을 넘기면,
감정이 폭발해 버리는 구조로.
그리고 매번 나는 이렇게 자책했다.
“왜 더 일찍 말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 반응 패턴이었다.
그녀는 내 어린 시절에 만났던 나를 위협하던 어른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감정 기복 심해서 눈치 보게 만드는 사람
주인 되게 살지 못해서 항상 남을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
속에 화가 많고 어떻게 다룰지 몰라 쉽게 분노하는 사람
자신의 권위와 지위를 위해서 남용하는 사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피해를 전가하는 사람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은 과거를 현재로 착각했고,
자동으로 순응하고 위축돼서 나도 모르게 과잉 책임을 떠맡아
자기 억제 모드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 사건의 진짜 의미는 분명하다.
나는 지금 참았던 사람에서
자기의 영역과 안전을 지키는 사람으로
이동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내 신경계에
이 문장들을 새로 심기 시작했다.
“경계를 세워도 나는 안전하다.”
“불편함을 말해도 나는 버려지지 않는다.”
“나는 분위기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
감사하게도,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에는 이렇게까지 무례하거나
경계를 넘는 사람이 여태까지 없었다. 그녀 덕분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벌이 아니라 내 시스템을 재설계하게 만든 스승이었다.
그리고 이 인생 수업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나의 이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큰 그림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