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 향하는 가장 조용한 길, 글쓰기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by 하늘빛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자유롭고

몰입했던 순간들은 대단히 역동적이거나

화려한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잔잔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감정 덩어리 그 자체였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상황에 심하게 이입해 울다가

눈이 퉁퉁 붓기 일쑤였고,

책장을 넘기다 마주친 문장 하나에도

가슴이 절절히 울리던 아이였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이

여과 없이 내 안으로 깊이 밀려 들어왔다.

그 감정의 무게는 예민한 나에게

때로 벅찼고, 때로는 버거웠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너무 예민하고, 눈물이 많고, 여리다고.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넘치는 감정들은

어쩌면 삶의 다채로움을 오롯이 만끽하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그 감정들은 나를 잠식시키는 짐이 아니라,

나를 자유로 이끄는 통로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언제나 글쓰기가 있었다.


노트북의 매끄러운 타이핑보다

노트를 펴고, 좋아하는 펜을 골라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꾹꾹 눌러쓰는 감각.

그 행위는 나에게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였다.


그때가 내가 가장 나답게 자유로웠던 순간이었다.

신나게 뛰놀던 기억보다도

글을 쓰며 차분해지던 그 감각이

나에게는 더 선명한 행복이었다.


쓰는 행위는 늘 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글을 쓰기 전의 나와

글을 쓴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쓰기 전의 마음은 감정의 쓰나미 같았지만,

마침표를 찍고 난 뒤의 나는 고요한 호수가 됐다.


특히 나는 시 쓰는 것을 좋아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정제하고 농축해

짧은 운율에 담아낼 때의 긴장감,

그리고 해소될 때 오는 카타르시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감정 해소였고, 생존 도구였고,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자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순간,

세상으로 뻗어 있던 나의 안테나는

비로소 방향을 틀어 내면을 향했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과 독대하는 시간.


글쓰기는 외부의 소음 대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를 듣게 했고,

남들의 기준 대신 내 감각을 믿게 했고,

혼란 대신 지혜를 길어 올리게 했다.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즐거움이 있지만

글쓰기만큼 깊고 오래가는 만족은 드물다.

몸을 크게 움직이며 놀지 않아도,

조용히 앉아 펜을 들고 있을 때

나는 가장 충족된다.


그래서 이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너에게는 글쓰기라는 도구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네 안에서 스스로 답을 길어 올리는 법을

이미 너는 알고 있어.”


“계속 써라.

그것이 너를 다시 너에게로 데려갈 것이다.”


내가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은 결국,

나와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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