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는 뚜벅뚜벅_강화도 나들이(하)

고인돌 유적지에서 전등사로

by Peach못한
아까 그 버스

(강화 역사박물관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 후 버스 노선을 체크하는 것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내가 탈 수 있는 버스 중, 가장 빨리 도착하는 것은 30번이었다.

'아, 아까도 30번 버스였지.'

고인돌 유적지에 내릴 적에 버스 음성을 듣지 못하여 내리지 못할 뻔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정말 잘 듣고 내려야지.


도착한 30번 버스.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익숙한 비주얼 - 아까 그 기사님이시다.

반가웠지만 반갑지 않기도 했다 : 같은 기사님이라 함은, 이번에도 버스 안내음성이 작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긴장한 채로 귀는 스피커에, 시선은 창 밖에 고정시켰다.

'그래도 강화 터미널이 종점일 테니까, 타이밍을 놓치지는 않을 거야.'


...

'어라?'

또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

허겁지겁 가방을 들고 문 앞에 서자, 기사님께서 다시 문을 열어 주셨다.

다급하게 내리며 카드를 찍는데 찍히지도 않았다.

결국 환승 혜택은 포기한 채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정신 좀 차리고 살아."

허겁지겁 내리는 나를 보며 지나가던 할머님께서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해 주셨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 오늘따라 내가 왜 이러지?

두 번이나 내릴 곳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나 버스 또 타야 하는데, 큰일 났다.'


타는 속을 달랠 겸, 멀미를 해소할 겸.

콜라를 한 병 사 들고 나오다가 강화 나들길 스탬프 투어를 발견했다.

하지만 스탬프를 찍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허받은 김밥 한 줄

다행히 이번에 탄 70번 버스는 우렁찬 사운드를 자랑하는 버스였다.

마음이 한결 가뿐해짐을 느꼈다.

스트레스는 아메리카노 위의 거품처럼 사르륵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전등사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미리 준비해서 내린 나, 기특하여라.


전등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타박타박 걸어가 본다.

이 날은 점심을 챙겨 먹기로 결심했기 때문인데 - 전등사 부근에 독특한 식당이 하나 있다 해서 그리로 향해 보았다.


가정집 같은 외관에 가정집이 아닌 듯한 인테리어.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러 메뉴가 있었으나, 그중 특허를 받았다는 꽁치가 들어간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직접 만드신 듯한 단무지가 독특했다.

고추냉이 간장에 김밥을 찍어 먹는 컨셉도 독특했다.

나는 본래 초밥에 있는 고추냉이도 빼고 먹는 편이지만, 이 김밥은 고추냉이를 풀어 넣은 간장과 함께여야 한다 - 아주 잘 어울렸다.

후추가 들어간 계란국도 홀짝 마셨다.


강화 전등사

'이 길이 맞는 걸까.'

아무리 봐도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곳 같은데 네이버 지도는 계속해서 나를 이 길로 안내해 주었다.

한 10분 가까이 오르막을 오르다가, 내려오는 두 분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근히 가파른 오르막은 자꾸 짧은 숨을 들이마시게 만든다.

겨우내 걷지 않았더니 체력이 더 떨어진 것 같다.

... 올해는 정말 운동을 좀 해야겠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에 강화 전등사 스탬프가 추가되었다!!

이로서 하루에 스탬프 여권에 도장 3군데를 찍게 되어, (본의 아니게) 2026년 계획 하나를 클리어해버렸다.


올라오는 길에 더워서 벗어 버린 외투를 가방에 넣은 채 전등사를 짧게 한 바퀴 둘러보고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이 날, 나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림 그리기!

어반스케치를 늘 해 보고 싶었는데, 왠지 외출할 때마다 자꾸만 스케치북 챙기는 것을 깜빡한다.

이번에는 전날 밤에 미리 가방에 넣어 두었다 - 물감도 함께.

오늘은 밑그림도 없이 용감히 그려 보리라.


그리고, 그림은 굉장히 용감했다.

비율이고 뭐고 하나도 안 맞는 이상한 결과물.

바람이 쌩쌩 부는데, 팔뚝이 둔할까 봐 바들바들 떨면서 겉옷을 벗은 채로 그림을 20여 분간 그렸더니 몸이 사시나무처럼 달달 떨려 왔다.

차마 물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림선도 지렁이 같은데 채색까지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만 같았다.

결국 가방을 열어 이상한 결과물과 외투를 등가 교환 했다.

'아... 따뜻해...'

체온이 살짝 올라가길 기다리며 다시 한번 전등사를 구경해 보았다.

전등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는 벌거벗은 여인상 한컷 찰칵.


커피 한 잔 후 집으로

'와, 이대로 집에 갔다가는 앓아눕겠는데?'

정류장 근처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갑자기 온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 '감기의 징조'을(를) 획득하였다.
- 효과는 굉장했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감기 기운의 주범인 스케치북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걸 채색을 해야 하는데.

막막한 기분.

학교 다닐 때 정말 못하던 과목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채화 그리는 미술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그림은, 나중에라도 채색을 꼭 해 보리라.


그리고는 버스를 탔다.


마무리

떠올려 보면, 이 날 버스만 다섯 시간 넘게 탔었다.

물론 지하철까지 다 합한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이동에 사용한 셈이다.

결국 집에 가자마자 뜨거운 물로 씻었음에도, 감기를 등에 업고 뻗어 버렸다.

어쩐지 온몸이 묵직하더라니.

이 날 나는 중요한 것을 하나 느꼈다: 그림 그릴 때는 불편해도 외투를 입자.


그리고 또 느낀 점.

1. 역시 나는 걷는 게 좋다.

2. 여행에는 늘 변수가 따르므로, 너무 지나치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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