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분명히 세탁기에서 다 꺼내온 것 같은데
양말들이 하나씩 사라져 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혹시 집 안에 블랙홀이 있는 게 아닐까?
구멍의 흔적을 찾아 샅샅이 뒤지고 뒤진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
왜 양말이 '사라졌다'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엄연히 발로 이루어진 존재들이다.
물론 집요정에게 한 짝이 납치되는 특수 상황도 발생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그들이 사라졌다면 '가출'로 보는 게 적합하다.
그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친구들이 왜 나갔을까.
1.
혹시 줄기차게 매일 그 양말만 신고 빨고, 마르면 또 신지는 않았는가?
사람에게 근로 기준법이 있듯, 양말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양말은 숨 쉴 공간도 없는 타이트한 공간, 악조건 of 악조건에서 일하는 3D 근로자이다.
이들을 직장 보내듯 주 5일 굴리면 멘탈이 나갈 수밖에 없다.
반드시 일을 시켜야 한다면 격일로, 한 주에 최대 3일을 넘기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2.
혹시 양말을 퇴근시킬 때 돌돌 말아서 집어던지듯 내동댕이 치지는 않았는가?
양말도 감정이라는 게 있다.
정중하게 벗어둔 후 곱게 개켜서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깍듯이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손히 대한 양말은 다음날까지도 집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3.
혹시 양말과 옷을 한데 합쳐서 세탁기라는 무시무시한 기계에 뱅글뱅글 돌리진 않았는가?
양말은 매우 섬세한 친구들이라, 퇴근 후에 보통 멘탈이 나가 있다.
정신 차리기 전에 통 속에 들어가 버린다면, 지진이 일어났다며 무서워서 달아날 수 있다.
지친 하루를 끝낸 양말들은 거품 목욕과 마사지를 원한다.
조물조물, 피로를 풀어 주는 손빨래가 적합하다.
이렇게 양말을 예우해 준다면
아마 그들은 절대 가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듯, 양말도 평생직장을 참 좋아한다.
그럼 이미 가출한 양말들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질투심을 이용하면 된다.
아주 예쁜 양말을 마련한 뒤, 그 양말에게 애정을 쏟는다.
집을 나갔던 양말들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은 온 신경이 집에 쏠려 있다.
나를 애타게 찾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찾지도 않고, 심지어 새로 온 양말을 좋아한다?
새로운 양말에 대한 호기심과 질투심을 못 이기고 그들은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귀환을 알릴 만한 말재주가 없다.
보통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구석에서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느지막이 돌아온 양말에게 질책의 말을 건네는 대신, 따스한 물에 거품목욕과 마사지를 시켜 주고 다정한 말을 해 주자.
그러면 그 양말은 기분도 풀어지고, 한결 유쾌한 마음으로 새 친구와도 잘 지낼 테니.
양말이 행복해야 내 발도 행복하다.
양말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