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죽으면 나 꼭 묻어주고 가야 해?”
“물론이지, 오빠만 믿어.”
신혼 초 나는 이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하지만 너도 내 나이 되어보면 알 거라면서 앉았다 일어나면 에구구 소리를 달고 사는 6살 연상 남편. 집안 대대로 당뇨 유전이 있는데 환타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사랑하는 남편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신장결석으로 돌까지 깨고 왔다. 이런 남자가 과연 나보다 오래 살아서 날 묻어주고 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자꾸 되묻는다.
“오빠, 그 약속 기억해?”
“뭐?”
“내가 죽음이 두려운 이유 얘기해 줬잖아. 난 내가 소멸하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아. 죽어보지 않아 정확한 느낌은 모르겠지만 마치 잠들 때 까무룩 의식을 잃는 것처럼 생이 끝나는 그런 기분일 거 같아. 더구나 그때는 늙고 병든 몸일 테니 노쇠한 몸을 놓아버린다면 심지어 자유로운 기분마저 들 거 같아. 하지만 그 순간 혼자인 건 정말 싫어. 마지막에 누가 내 손도 잡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면서 무섭지 않은 거라고 다독여 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내가 널 기억해줄 테니까 이제 편안하게 가도 된다고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근데 그 순간 혼자라면 정말 너무 외로워서 죽을래도 죽지 못할 거 같거든. 그러니까 날 정말 사랑한다면 그렇게 내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고 나 묻어주고 그다음에 가야 한다는 약속 말이야.”
“아, 기억하지. 오빠만 믿어.”
“…으응.(근데 예전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 걸 어쩌냐)”
자녀가 없는 부부는 자녀가 있는 부부에 비해 파트너의 건강에 더 신경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가족이라고는 오직 둘뿐이니 상대방의 변화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을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하지만 자꾸 남편의 건강이 신경 쓰이는 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 아닐까. 혼자 남게 될 두려움 말이다. 두 사람 중 한쪽이 아파버리면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선택한 삶에 치명타다.
그래서 오늘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젠 환타는 사 오지 말자, 도넛은 한 달에 한 번만 먹자, 동네 수영장 리모델링이 끝나면 꼭 등록해라, 이렇게 어르고 달래고 애원한다. 하지만 남편은 우리 집안엔 그래도 암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며 걱정 말라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도 그 나름 늚음을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을. 방금 찍은 자기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저씨 다 됐다고 헛헛하게 웃거나 더 효과가 좋다는 탈모방지 샴푸에 관심을 갖는 걸 보면 어쩐지 내 마음도 짠하다. 어쩌면 내가 저 사람을 묻어주고 가야 할 수도 있다. 나보다 연상이고 통계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장수한다고 하니 내 앞에 닥친 팩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나는, 도저히, 당신 묻어줄 자신이 없는데…
"오빠, 그냥 우리 한날한시에 같이 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