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남편과 거의 10년을 만나고 결혼하다 보니 아직도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 같다. 여전히 애인이랑 동거하는 기분인데 남편 역시 같은 기분이란다. 여자 친구랑 같이 밥해 먹고사는 기분이라나. 이 말을 듣고 아, 바로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후 가장 큰 차이라 한다면 바로 함께 밥을 해 먹고 산다는 것이다.
‘식구’는 널리 알려진 대로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이다. 우리의 끼니를 챙기는 사람은 역시 남편(남편이라 쓰고 요리 꿈나무라 부른다)이다. 무엇보다 그가 나보다 칼질을 잘한다. 잘하는 사람이 하니 서로 불만이 없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주방을 내어준 아내로서 약간의 변명을 더하자면 입맛이 더 까다로운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한 대접 끓여낸다면 그는 특유의 닭 비린내가 싫다고 안 먹을 사람이다. 차라리 그가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나랑 나눠 먹는 게 더 효율적인 삶의 방식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가 해주는 요리를 다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 있다.
남편은 초딩 입맛의 소유자로 가리는 음식이 많다. 나물은 질겨서 싫고 치킨은 뼈가 있어서 싫단다. 몸이 안 좋으면 죽 대신 수프를 먹는데 죽에서 쌀 특유의 비린내가 나서란다. 대신에 돈가스, 탕수육 등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분명하고 그 음식들을 너무 사랑한다. 남편에게도 나름 변명이 있다. 그는 누구보다 예민한 후각과 시원찮은 치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씹기 좋게 부드러워야 하고 좋은 향을 가져야 한다.(그래서 주방에 이름이 어려운 향신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는 내가 그에게 맞춰주면서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매번 끼니때마다 ‘오늘 뭐 먹고 싶냐’며 내 의견을 물어본다. 이런 다정한 남자 같으니.
그럼 내 머릿속은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지금 우리가 가진 식재료와 주방장인 남편의 요리 능력치 사이에서 복잡한 조율을 시작한다. 사실 ‘오늘 뭐 먹지?’에 대한 결정권은 엄청난 권력이지만 동시에 우리 식구의 만족스러운 한 끼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매번 치열한 고뇌가 필요한 작업이다. 결국 이 치열한 의사결정은 가족의 밥상을 뚝딱 차려내신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성스러운 시간을 잠깐 가진 후 시켜 먹을까, 나가서 먹을까 등으로 일탈했다가 다시 집밥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난항 끝에 어제와 비슷한 한 끼를 해 먹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이 과정 에서 남편의 알리오 올리오 실력은 일취월장해서 자주 해 먹어도 만족스럽다.)
남편은 이미 결혼식장에서 하객들 앞에 나를 거두어 먹이겠다고 혼인서약까지 한 몸이다. 우리는 셀프 웨딩을 치렀는데 주례 없이 서로 혼인서약서를 읽었다. 각각 세 가지 서약을 했는데 남편의 서약 중 하나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아침을 차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서약이 듣는 사람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친척들은 아직도 ‘네 각시 아침은 잘 차려주고 있느냐’고 장난스럽게 묻는 걸 보면 말이다. 아침에 주로 계란, 사과, 토마토 등을 먹는 나를 위해 마트에 가서 좋은 사과를 고르고 아침에 먹을 계란을 전날 저녁 미리 삶아놓는 남편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근데 이쯤에서 내가 한 혼인서약이 뭐였는지 왜 생각이 안 나지)
여기에 우리가 거두어 먹이는 또 하나의 가족 구성원이 있다. 바로 라니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