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거두어 먹일 것 (2)

가족의 완성

by 김나현

라니는 우리 부부와 함께 사는 멍멍이다.


몸무게 2.6kg의 작은 포메라니안으로 (돼메리니안으로 계속 다이어트 중이다) 털은 크림색이고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다리가 좀(?) 아니 사실 많이(!) 짧다. 원래 얼굴도 동안이지만 아장아장 걸을 수밖에 없는 짧은 다리 때문에 더 애기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현재 7세. 사람으로 치면 중장년이다.


원래는 아빠 멍멍이였다. 당시 나는 은퇴해서 집에 있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처음에는 아빠의 관심이 싫지 않았는데 다 큰 딸 옷차림 갖고 뭐라 하니 잔소리처럼 여겨질 수밖에. 아빠는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파묻혀 텔레비전을 봤다. 아빠 스스로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아빠는 우울증이었다.

나는 아빠의 부담스러운 관심을 돌리기 위한 작전을 도모했고 그 결과가 라니였다. 부모님 허락도 없이 라니를 데려오자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엄마는 당장 데리고 나가라 했고 아빠도 화를 냈다. 물론 가족의 동의 없이 반려견을 들이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이렇게 가족들이 화를 냅니다) 하지만 당시 내 무모한 행동에 변명을 하자면 우리 가족에게는 라니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은퇴 후 삶이 무기력한 아빠와 그런 아빠를 답답해하는 엄마, 직장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던 동생은 안 그래도 좀 겉돌았는데 더 심해졌다. 우리 가족의 음울한 분위기에 변화가 필요했다. 만약 가족들이 끝까지 반대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냥 나가 살더라도 내 멍멍이로 키우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라니는 성공적으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됐고 온 가족의 최고 관심사가 되었다.


라니는 겁이 많고 소심한 멍멍이다. 심지어 우리 집에 와서 거의 6개월 동안 한 번도 짖지 않았다. 아빠는 라니가 혹시 성대 수술을 받았거나 장애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간혹 기침하듯 오리처럼 컥컥거리었는데 그걸 짖는 소리라고 착각하면서 목소리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기관지 협착증이 있는 아이들 기침소리였지만.) 그동안 계속 우리 눈치를 보고 있다가 6개월 정도 우리 집에서 지내자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왕!" 그 앙칼진 목소리에 모두 깜짝 놀라 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니, 너 짖을 수 있었어?” 라니 역시 우리를 그렇게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라니의 소심병이 낳은 대표적인 에피소드 하나가 바로 ‘밥그릇이 움직여요’ 사건이다. 라니가 신나게 밥을 먹고 있다가 가벼운 플라스틱 밥그릇이 움직였나 보다. 그 뒤로 밥그릇은 막 스스로 움직이는 '무서운' 물건이라고 인식한 라니는 밥그릇 앞에서 얼음이 됐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그릇을 무서워했다. 맛있는 까까가 있는데 그릇 위에 올려놓으면 가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심란한 일이었다. 밥이랑 까까는 그래도 손으로 주면 됐지만 문제는 물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강아지용 휴대용 물병이 있어서 그걸로 자주 물을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폭풍 검색을 해보니 라니 같이 그릇 공포증이 있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소심이들이었다. 문제 행동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하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라니가 겁쟁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이른바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밖에 없다면 라니를 데리고 세상을 주유(?)했다. 세상은 그렇게 고요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공부하기 위해 조용한 산책길을 벗어났다. 버스와 트럭이 지나는 도로 옆에 서서 이것 보라고, 세상에는 이런 큰 차들이 무서운 거라고, 밥그릇 따위가 뭐가 무섭냐며 나름 호되게 가르쳤다. 길바닥에서 그렇게 싸돌아다닌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라니는 한 달만에 밥그릇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강아지랑 살면 이런 에피소드가 말도 못 하게 많이 생긴다. 라니 얘기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다. 강아지 얘기만 하면 항상 이렇게 옆길로 샌다.(자식 자랑이랑 유사하지만 좀 다른 게 라니의 바보짓이 주요 화제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애초 아빠 멍멍이이었던 라니가 나와 남편에게 온 것은 라니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아빠는 두 딸내미가 결혼하고 나가자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그 꿈은 고향에 전원주택을 짓고 것이었다. 설악산 줄기 아래 마을인지라 제대로 된 동물병원을 가려면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다. 라니는 특발성 경련이라는 병이 있어 계속 항경련제를 먹으면서 정기적으로 검짐을 받아야 했다. 의료 혜택을 누리려면 서울 멍멍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니는 나와 남편에게 왔다. 이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남편의 도움이 컸다. 사실 우리 둘 다 직장생활을 했다면 라니를 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서 일하고 있어서 라니를 전적으로 돌봐줄 수 있었다.

라니를 돌보는 일은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일 전투를 치르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를 키우는 게 백배 더 힘들 거 같지만 이 녀석도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실컷 초저녁 단잠을 자고 나서 항상 새벽 3시쯤 깨우는 덕에 나는 2년 넘게 쪽잠을 자며 만성 피곤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에게 당신은 왜 라니가 새벽에 깨워도 일어나지 않느냐고 푸념을 하면 내가 강아지 버릇을 잘못 들였다며 또 그렇게 새벽에 깨우면 엉덩이를 ‘퐁’ 때리고 다시 자라고 하는데 이미 비공식적으로 우리 집 서열 1번이신 라니님이 그렇게 말을 잘 들을 리가. 옆집 윗집 다 자는 새벽에 멍멍 짖을까 봐 놀아주고 안아주고 먹을 것도 좀 입에 물려주고 자장자장 하면 그제야 만족하고 새벽 6시쯤 다시 잠든다.(이럴 땐 웬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가끔 아파도 씩씩하게 회복하는 녀석을 보면 참 애틋하다. 분리 불안 없이 집을 지키다가(아니 잘 자다가) 일 끝나고 돌아오는 나를 힘껏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줄 때 기특하다. 자기에게 필요한 ‘까까’, ‘산책’ 이런 말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이리와’ ‘뽀뽀’ 같이 지가 하기 싫어하는 말은 못 알아듣는 척하는 그 깍쟁이같이 영민함이 기가 차게 놀랍다. 더구나 사람처럼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더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라니가 오늘 컨디션이 어떤지, 어디 불편한 데 없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바라봐야 하고 라니 역시 내가 언제 까까를 줄지, 산책을 언제 할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안 그래도 치명적으로 귀여운 얘를 매일 관찰하고 어루만지니 안 예쁠 수가 없다.


가족의 완성이라는 게 엄마, 아빠, 자녀라는 이상적인 조합이 전부가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마음을 주고 밥을 나눠먹고 서로의 이부자리를 파고들면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떨어지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좋다. 이런 게 가족 아닐까. 새벽에 쪽잠을 자야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 갈 수 없지만 라니에게 나를 내어주는 게 아깝지 않다. 이 소중한 존재가 언젠가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을 알기에 그 찰나와 같은 순간순간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이렇게 가족이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