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의 탄생
“내 사주에 물이 부족하대. 그게 어항을 좀 놓으면 좀 나아질 거라는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남편의 옛 친구가 사주를 좀 볼 줄 안다며 오빠 사주를 봐줬단다. 아, 어항이라. 그래도 어항이어서 다행인 건가. 호수나 바다 근처로 이사 가야 인생 풀린다고 말해주지 않아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나는 반대했다. 어항에 대한 나쁜 추억 때문이다. 어렸을 때 민물낚시하는 게 취미였던 아빠가 집에 빠가사리들 몇 마리로 어항을 꾸민 적이 있는데 얘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만 남은 물고기를 보는 건 어렸을 때로 충분했다.
어항에 반대하자 슬슬 수초항으로 이야기를 돌리는 노련한 남편. 물고기 없이 초록이들만 키우겠단다. 그건 솔깃했다. 집이 원체 그늘져 키우던 식물이 다 죽어버려서 식물 키우는 건 포기하고 살았는데 초록이를 방에서 볼 수 있다니.
손재주 많은 남편은 인터넷으로 어항과 흙과 돌과 씨앗과 조명을 사서 꽤 그럴싸하게 수초항을 꾸몄다. 좋은 세상이다. 흙과 돌과 씨앗을 구하러 멀리 산야를 헤맬 필요 없이 간단하게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 놀이를 할 수 있다니. 또 좁은 방에 수초항을 놓을 자리를 창조하기 위해 찬넬 선반도 달았다. 조명까지 다니 꽤 그럴싸한 인테리어 소품이 된 듯싶었다. 이때까지 좋았지.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퇴근하고 오니 어항에 뭔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
“이게 뭐야?”
“어항이 아무래도 허전한 거 같아서. 이마트에 갔더니 구피를 추천해 주더라고. 가장 키우기 쉬운 얘들이래.”
“뭐? 난 물고기 싫은데!”
아, 그렇게 나의 평화로운 수초항이 어항으로 전락해버렸다. 꼬리 치며 노는 암수 구피 한 쌍이 어항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이런 근심의 씨앗들!”
나는 탄식했다. 이렇게 물고기 이름은 근심이(암컷)와 걱정이(수컷)가 되었다.
나는 애써 어항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혹시나 그 얘들이 배를 뒤집고 물에 둥둥 떠있는 장면을 볼까 봐.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침, 늦게까지 아침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여보, 일어나 봐. 큰일 났어.”
“응? 뭔데?
“구…구피가 새끼를 낳았어!!”
아, 이 녀석들.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만에 근심이가 새끼를 낳아버렸다. 어쩐지 배가 빵빵하더라니. 나는 그 빵빵한 배가 수면에 뒤집힌 채 떠있는 것만 걱정했지 새끼를 낳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런 똥멍충이같으니.
그제야 구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 시작! 구피는 사실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아이들이란다. 헉. 새끼를 낳고 또 낳고 또 낳고 또 낳는단다. 어항에는 작은 점 같은 새끼들이 스무 마리 남짓 되었다. 이런 구피의 속성을 생각하면 이곳은 무한 번식의 루프에 빠질 것이다. 이 대참사를 어떻게 막지. 역시 얘들은 ‘근심의 씨앗’이었다. 근심도 씨앗도 모두 이름대로 갔다. 그래, 이게 다 그렇게 이름 붙인 내 잘못이다.
이 카오스에 대해 오빠가 내놓은 대책은 어항을 하나 더 사서 근심이와 걱정이를 견우와 직녀로 만들겠다는 것. 그렇다면 더 이상의 번식은 당분간 없다. 다시 어항과 흙과 돌과 씨앗과 조명이 배달되고 또 하나의 생태계가 탄생했다.
“그럼 새끼는 어떻게 해?”
“그건 나도 정말 모르겠어. 일단 이대로 좀 지켜보자.”
작은 점들이 물풀 사이를 이리저리 들락날락하며 잘도 돌아다닌다. 얘들을 어쩌지, 아주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걔들은 고민이(고미니)가 되었다.
하지만 어항 생태계는 날로 진화했다. 그렇다. 고미니가 끝이 아니었다. 갈 데까지 가버린, 근심걱정고민이 가득한, 이 놈의 어항 스펙터클 막장극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