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거두어 먹일 것 (2)
어항, 그 2.5리터의 책임감
#괜한 기우였군!
근심이 걱정이가 사는 어항은 각각 2.5리터. 너무 작아서 여과기를 달기 애매했다. 그래서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 남편은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준다. 물갈이 도구의 변화를 보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물호스를 이용해 물갈이를 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어항이 너무 작아 보통 사람들이 물갈이 때 쓴다는 ‘쭉쭉이’를 쓸 수 없자 주방에서 안 쓰는 소스통을 찾아냈다. 입구가 길고 몸통이 말랑말랑 해 케첩이나 기름을 담아 쪽쪽 짜서 쓰는 소스통 말이다. 그걸 물에 담가 통을 한번 쪽 눌렀다 때면 물이 빨려 들어왔다. 이 방법은 대략 한 시간이 걸렸는데 그게 답답했는지 물 호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과학실에서나 보던 투명 재질의 가느다란 에어튜브 말이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났나 물어보니 역시 이마트에서 샀단다) 호모 사피엔스는 직접 물을 퍼 나르다가 낙차에 의해 물이 이동할 수 있음을 깨닫고 아하, 한 것이다. 낙차를 크게 하면 크게 할수록 물이 빨리 이동할 수 있음을 깨닫고 싱크대에서 식탁으로 장소를 옮겨 지금은 30분이면 물갈이를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항에는 이끼가 끼었다. 이끼를 없애보기 위해 조명 시간도 조절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더 이상 안 되겠는지 풀에 붙은 이끼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떼어내던 남편은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도구(?)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생물학적 병기. 바로 새우다. 새우를 들이기까지 남편은 고민이 많았다. 남편이 새우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가 왜 고민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새우 초심자의 감상을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징그럽고 못생겼다. 움직이는 수많은 다리를 단 벌레 같다. 머릿속 이미지와 확대된 실물 사진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끼를 끝내주게 먹어치운다는 말에 결국 새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새우의 이름은 ‘기우’가 되었다.
그렇지만 어항에 대해 순진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기우‘들’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피처럼 한 마리가 올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이새우 열댓 마리가 왔다. 그것도 부족해 야마토 새우가 더 들어왔다. 도대체 정이 안 가는 외모에 득실득실 많기까지 하다니. 하지만 명성대로 이끼 하나는 끝내주게 먹어치워 수초에 붙어있던 이끼가 싹 사라졌다. 근심, 걱정, 고민, 기우는 꽤 조화롭게 잘 살게 되었다. 기우는 뜻 그대로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고미니의 수난
구피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낳아버린, 그래서 자신들이 근심의 씨앗임을 증명한 고미니들. 지금은 두 마리만 살아남았다. 검색을 해보면 구피는 새끼를 먹기도 하므로 분리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좁은 선반에 세 번째 어항을 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보다 우리 고미니들은 몸을 빠르게 놀릴 줄 알아 근심이 걱정이가 다가오면 잽싸게 수풀 사이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나중에는 플라스틱병과 양파망을 이용해 어설프게나마 DIY치어항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고미니들은 하나둘 사라져 갔고 최종적으로 4마리가 남았다. 2마리는 각각 어항을 옮겨주다가 뜰채에 끼어 죽었고 꼬리병(꼬리지느러미가 자라지 않고 뾰족하게 되어버리는 병이다) 치료를 하다가 죽었다.
그 조그만 점들이 몸도 길어지고 지느러미도 생기는 걸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살아남은 녀석들에게서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남은 문제는 녀석들을 ‘근심이항’에 넣을지 ‘걱정이항’에 넣을지가 문제였다.
“여보, 근데 얘네 암수 구분은 어떻게 해?”
“걱정 마. 내가 알 수 있어.”
그때 내 눈엔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남편이 산전수전 다 겪은 구피 전문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편이 신중하게 나눈 고미니 남과 여는 나중에 완전 반대였다는 게 반전이지만 말이다.
#어항다반사
나 같은 물고기 무지렁이가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물고기도 병에 걸린다. 근심이의 꼬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일명 ‘꼬리갈라짐병’이라 불리는 이 병은 구피에게 꽤 흔하게 발생하는 병이며 소금이나 약을 탄 물에 넣어서 치료한다고 한다.
남편은 락앤락 박스 뚜껑에 소금물에 농도를 표시해 놓고 근심이의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 그 모습은 꽤나 그럴싸해서 흡사 수술을 집도하기 전 신중하게 장갑을 끼는 의사의 진지함과 닮아있었다. 근심이는 다행히 치료가 잘 됐다. 하지만 다른 어항에 있던 걱정이의 꼬리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소금물 입원을 했고 꼬리가 살아나는 듯 보여 다시 어항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꼬리가 갈라졌다. 계속 치료와 회복을 반복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고 얘들 저녁밥을 챙겨주려고 갔더니 오 마이 갓!! 걱정이가 배를 뒤집고 둥둥 떠 있었다. 내가 물고기를 가족으로 들이면서 가장 걱정했던 상황이 내 눈 앞에서 (하필 남편도 없는 이 상황에) 발생한 것이다. 기우들이 걱정이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물속 쓰레기를 치우는 게 녀석들의 일이니 뭐라고 나무랄 수 없지만 한집 살이 하던 가족을 먹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항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남편이 뜰채를 어디에 뒀는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살림살이를 뒤져서 뜰채를 찾아냈고 걱정이의 시신을 거두어 락앤락 박스에 담아두었다. 내가 어찌나 호들갑을 떨면서 이 일을 처리했는지 우리 강아지 라니까지 평소에 잘 안 오는 서재방으로 쫒아와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뭐하느라 이제 전화해? 걱정이가 죽었어!”
“헉! 걔가 왜 죽었지?”
“몰라, 기우들이 몰려들어서 내가 뜰채로 건져줬어. 내가 왜 이런 일을…(으흐흑).”
마음이 아팠다. 적자생존이 난무했던 어항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부터 마냥 얘네들한테 부정적이기만 해서 이렇게 일찍 떠난 걸까. 이름을 근심이와 걱정이로 지어서 근심만 안고 살아서 오래 못 산 걸까. 처음부터 좀 예뻐해 줄 걸. 남편이 밥 좀 줘보라면서 물고기 밥을 건네줄 때 ‘흠칫뽕!’하면서 계속 피했던 게 괜히 미안했다. 사실 너희에게 정을 붙이면 이렇게 이별할 걸 감당할 수밖에 없을까 봐 그랬던 거 같아.
그렇게 걱정이가 갔다. 우리 부부가 이름 붙이고 거두어 먹이던 것이 죽었다.
# 어항, 그 끝은 창대하여라
하지만 어항 덕에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 근심, 걱정, 고민, 기우라는 일명 근심 시리즈 작명에 남편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배를 잡고 웃었다. 남편이 구피 정보를 검색하던 사이트가 ‘담뽀뽀의 물생활’이란 곳이었는데 그 덕분에 라면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80년대 일본 코미디 영화 ‘담뽀뽀’를 보게 됐고 그 여운이 남아 동네 일본 라면집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 집이 엄청난 맛집이었다는 큰 수확을 얻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항 덕분이다.
이제 새우가 포란을 해 새끼들도 산다. 어느 날 보니 배에 알을 붙이고 다니는 걸 보고 이 녀석들이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생명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새끼 새우들은 귀엽기까지 하다며 남편은 새우 먹이를 따로 사두었다. 처음에는 징그럽다고 몸서리치던 새우였는데 지금은 배 주릴까 봐 걱정하다니. 어항의 시작은 미비했으나 거두어 먹일 것이 늘어나고 시끌벅적해졌다. 2.5리터의 책임감은 실로 엄중했다.
오늘도 그 엄중한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고 물갈이 ‘노동’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어항 덕에 당신 팔자는 좀 폈어?”
앗, 물어보는 타이밍이 좀 그랬나.
새우를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