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부터 시작된 두통은 2주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씩 강도만 달라졌을 뿐이다. 뒷목에서 묵직한 통증이 시작되면서 머리 전체를 옥죄어 오는 두통. 속이 울렁거리면서 맥박과 함께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통증. 늘 겪어온 편두통 증상이었다. 다만, 진통제를 먹으면 잘 가라앉던 통증이 다음날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진통제를 2주 가까이 먹자, 나는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편두통 진통제를 처방해 준 동네 병원에 갔다. 2주 동안 편두통 진통제를 열흘 동안 먹었다고. 이제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다는 구조 신호를 보냈다. 의사는 무심히 예방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이 내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할 거고, 어떻게 편두통을 예방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편두통 진통제로 쓰는 크레밍도 바꾸고 싶었다. 이 약에 카페인이 들어있고 많이 먹으면 약물 자체가 편두통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다음날 다시 아픈 것으로 봐서 두통의 양상이 바뀌었으니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통증에 효과가 없는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내 두통을 좀 더 세심하게 진단해 주고 더 적합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길 원했지만, 그에겐 현재 쓰는 약이 효과가 ‘있다, 없다’만이 중요했다. 약을 바꾸고 싶다면 그저 NO라고 대답해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왔다.
약국에서 받은 약통 겉면에는 혈관 확장제라고 적혀 있었다. 편두통 환자들은 대개 뇌혈류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우가 많고, 진통제인 크래밍은 혈관 수축을 통해 두통을 잡는 역할을 했다. 예방약은 아마 그 혈관 작용에 관여해 혈류량을 조절하려는 목적인 듯 보였다. 약사에게 부작용을 물어보니 체증 증가, 우울, 피로감이 따라온다고 하지만, 드문 경우라고 덧붙였다. 나는 체중 증가나 우울은 괜찮았는데 피로감이 정말 무서웠다. 지금도 몸에 커다란 돌을 짊어놓은 것처럼 피로했기 때문이다.
막막했다. 이 약을 먹고 과연 나을까 하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런 마음은 의사의 무심한 태도와 관련이 깊었다. 나는 다른 병원을 찾고 싶었다. 네이버에서 두통을 검색하면 한의원이 엄청 많이 나온다. 그러다 결국 한 한의원에 충동적으로 예약을 했다. 원장님이 오랫동안 두통을 앓아왔고 두통의 끝판왕을 자부한다는 한의원이었다. 예약을 하니 증상을 청취하겠다면서 상담전화가 왔다. 그래서 내 증상을 전부 털어놓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의사한테 너무너무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였던 건데, 이걸 이제야 얘기한다는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온 것이다. 친절한 목소리의 상담사 분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 준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의원 예약은 취소했다. 한의원은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안 되면 그때 대안으로 남겨놓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병원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상급병원을 알아봤고, 무엇보다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뇌 MRI를 찍어보고 싶었다. 계속 아프니까 뇌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검색을 하다가 편두통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병원에 대한 글을 봤고, 그 병원이 내 회사 근처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신경센터가 있는 걸 눈여겨본 기억이 났다.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대학병원급 검사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예약전화를 했더니 초진이라 가장 빠른 시간이 이틀 후였다. 하루빨리 검진을 받고 싶었지만, 그래도 직장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