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읽을 줄 아는 여자가 이상형이었던 남자

배우자에 관하여_방구석보헤미안(남편)

by 김나현

우린 각자 자신만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배우자란 그 자동차의 조수석에 탑승한 상대방이며,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함께 운전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닐까...





20대 시절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라고 물으면 “지도 읽을 줄 아는 여자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호감이 가는 이성의 유형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꽤 엉뚱하지만,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자동차 면허를 딴 건 1996년 2월 무렵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5년 전의 일이니 새삼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고3때였던 1995년 여름, 생일이 지나자마자 교복차림으로 강남경찰서에 찾아가서 면허시험 접수부터 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운전학원을 두어달 다니다가 이듬해 바로 시험을 치르고 두 번 만엔가 합격했으니, 꽤나 어린 나이에 운전을 시작한 셈이다.


그 시절 운전자는 자동차를 능숙히 다루고 주변 교통흐름을 잘 살펴 무리 없이 주행하는 것만으로는 운전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려면 일단 ‘길’을 잘 알아야만 했다. 요즘에야 내비(내비게이션)가 차에 아예 장착되어 출고되거나, 휴대폰으로 다운받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만, 국내에 GPS를 기반으로 한 내비게이션이 처음으로 시판된 것이 1997년의 일이었고, 그나마도 회장님·사장님들이 타던 최고급차량에나 장착되던 귀한 물건이었다. 그 후로 시장에 보급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려서 2000년대 중반쯤이 되어서야 대중화 되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웬만한 길은 그냥 외우고 다녔었다. 운전 경력이 제법 된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주요 랜드마크의 위치와 최적경로를 다들 잘 알고 있었고, 처음 가보는 장소를 간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 든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상대위치가 대~~충 어디쯤에 있는지만 알면 도로표지판만 보고서도 잘들 찾아다니곤 했다.


먼 다른 지방을 처음으로 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때 요긴하게 썼던 물건이 ‘전국도로지도’라는 이름이 붙은 두툼한 지도책이었다. 많은 운전자들은 이걸 글러브박스나 시트 뒤편의 포켓에 한권씩 넣어두고 다녔다. 없으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안내소 같은데서 무료로 배포하는 관광안내도를 참고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랬다. 그 시절 내 이상형을 그렇게 말했던 건 운전할 때 옆자리에 앉은 여친(혹은 아내)이 지도를 보고 어디로 가야할지 말해줄 수 있는 내공이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국도를 타고 자동차 여행하는 걸 좋아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제발 누군가 옆에서 지도 좀 봐줬음 싶은 마음이 꽤 간절했었기 때문이다. 잘 아는 시내 도로도 가끔씩은 지도 볼 일이 생기는데, 난생 처음 가보는 국도는 오죽했을까. 때로는 지도 봐 줄 사람이 없어서 가는 길 중간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 한 다음 다시 출발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는데 하필 길이 편도 1차선이라 마땅히 차를 세울만한 곳을 찾는 게 힘들어서 정말 난감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지도를 보며 어떤 경로를 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파악하고, 갈림길이 나오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미리 말해주는 것, 딱 지금의 내비가 해 주는 기능이니, 세상이 좋아져서 다들 내비를 쓰는 바람에 하마터면 결혼 전 군인도 아닌데 독도법 시험을 볼 뻔 했던 아내는 극적으로 시험을 면제받은 셈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꼭 내비게이션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조수석에 앉는 것을 두고 ‘Riding Shotgun'이라고 하는데 하필 조수석을 두고 산탄총을 의미하는 ’Shotgun'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나름의 유래가 있다. 서부개척시절 역마차 운전자의 옆자리에는 동승자가 산탄총을 들고 앉아 강도들이나 적대적인 원주민들로부터 역마차를 지키던 일종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었기에 Shotgun(산탄총)이라 불렀고, 그것이 이어져 내려와 더 이상 총을 들고 탈 필요가 없어진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조수석은 그만큼 운전자가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던 셈이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남자들의 불문율> 이라며 인터넷에 도는 우스개 중에 “조수석에 앉는 것은 특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며, 조수석에 앉는 순간부터 당신은 승객이 아니라 부조종사다”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운전하는 사람이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디오, 에어컨의 조작을 돕는 일, 운전자가 목이 마를 때 물병의 뚜껑을 열어 건네주는 일, 운전하는 사람이 졸지 않도록 감시하고 또한 말동무가 되어 주는 일,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으면 대신 챙겨주기도 하고, 통행료를 낼 때는 현금을 미리 챙기고 잔돈을 정리하는 일, 지도를 읽어주거나 내비게이션을 대신 조작해 주는 일, 이 모두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며, 운전자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러니 만약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 역할을 해준다면 매우 고맙고 든든할 것이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이패스가 대중화되면서 더 이상 통행권과 잔돈을 정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동안 아내가 내비를 조작해서 목적지를 바꾸거나 경로를 바꾸는 일 등을 해 주었지만 이젠 운전 중에 ‘팅커벨’을 외친 후 음성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경로를 바꿀 수 있게 되었다. (팅커벨을 외치면 내비의 음성인식 모드가 시작된다) 자동차의 오디오 조작버튼이 핸들로 와서 조작이 좀 편리해지더니 요즘에는 목소리로 오디오와 에어컨마저도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역할은 물병을 건네주거나 말동무가 되는 것 정도만 남았으니 운전자뿐만 아니라 조수석의 동승자에게도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여담이지만 말동무가 되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마워 할 일이라는 건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 잠깐 사귀었던 여자친구 덕분에 잘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조수석 탑승자의 의무(?)는 둘째 치고 차만 타면 바로 잠드는 타입이라서 운전하는 동안 수다 떠는걸 즐기는 나에게 큰 실망만 안겨줬었다. 내가 아무리 툴툴대도 그건 바꿀 수 없었다. 졸립다는데 어쩌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제대로 수다가 되는 아내를 만나 운전할 때 참 좋았는데,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면서 그녀가 차에서 잠자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 나의 불만과 불안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지는 바람에 점점 조수석에 앉은 이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섭섭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서로 주고받는 도움은 단순히 ‘기능적인 편의’가 아니라 ‘심리적인 상호 교류’에 가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운전하면서 해야 하는 이런저런 일들은 (지도 보는 것 빼고) 조금만 집중하면 운전자 혼자서도 어찌어찌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조수석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내가 당신을 의지하고 있으며 당신의 도움은 매우 든든하다’는 안정감의 표현이자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애착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었다. 반면 조수석에 앉아 운전자를 돕는 것은 ‘사소한 도움일지언정 내가 당신을 돕고 지지하겠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의미의 표현이면서 ‘나의 보조행위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어 기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걸 에둘러 표현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


꽤나 진부한 비유이지만 부부란 ‘가정’이라는 자동차를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운전해 나가는 운전수/조수(영어로 Driver/Shotgun)의 관계로 많이들 표현하곤 한다. 다만 나는 이 비유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는데, 우린 각자 자신만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고 배우자란 각자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탑승한 상대방이며,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함께 운전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지향해야 하는 목적지가 반드시 같은 곳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부부란 각자 서로가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숫자에 약한 아내가 엑셀문서 하나를 붙들고 끙끙대고 있을 때, 이런저런 함수를 가르쳐 주며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운전하고 있는 아내를 돕는 내 방식이었고, 마르지 않는 빨래를 이리저리 옮겨대며 고군분투하는 내게 아내가 빨래건조기라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 역시 내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내 옆에서 아내만의 방식으로 나를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조력자의 역할을 AI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긴 한다. 조수석의 도움 중 상당수가 이미 기계로 대체된 시대를 살다보니 어쩌면 이런 시대는 곧 올지도 모른다. 물론 AI에게 진짜 감정이란 없고 그저 사람과의 대화를 정교하게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깜빡 속을 만큼 인간에게 공감과 위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척 할 수 있다면, 미드 ‘빅뱅이론’의 라제쉬가 Siri에게 홀딱 반하거나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이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드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이 AI를 배우자/반려자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일단 나는 ‘그래도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 훨씬 좋다’ 정도로 대충 얼버무리는 편인데, 이 문제를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을 정확히는 몰라도 단 한 가지 확실한건 있다. 아내는 AI(또는 기계) 목소리가 남편에게 너무 친한 척 하는걸 꽤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전의 내비의 종료멘트를 듣던 아내가 이렇게 투덜거렸다.

“흥 목소리가 엄청 끈적끈적 하네. 아주 헤어지기 아쉬워서 죽는구만. 요사스러운 것!”


지금은 버전이 바뀌면서 좀 나아졌지만 구버전에서 팅커벨은 꼭 마지막 종료 멘트 “나중에 또 만나요”를 할 때만 이상하게 진심으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느낌을 담아서 말한다. 성우 분이 연기를 잘 한건지, 내 아내가 그런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인지하고 들으니 그 목소리에 꽤 감정이 진하게(?) 베어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뭐 어쨌든 지금은 내 옆에 앉은 아내가 저렇게 AI의 목소리마저 경계(?)하며 철저하게 골문을 지키고 있으니 AI와 사랑에 빠지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커버이지미_wayhomestudio - kr.freepik.com

본문이미지_Travel - kr.freepi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