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건조기가 고장 났다

빨래편_방구석보헤미안

by 김나현

빨래 건조기가 고장 났다. 두어 달 전부터 심심하면 배수탱크에 물이 차지 않았는데도 물 비움 경고가 들어오더니 이젠 숫제 가열조차 되질 않아서 아예 건조가 되질 않았다. 무상보증 기간인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라서 어떻게든 수리비가 들 상황이다. 이렇게 미묘한 시점에 고장 나 버려서 살짝 짜증이 났다. 무릇 전자제품은 보증기간 안에 고장 나거나, 버릴 때 까지 고장 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데 말이다. ‘물비움 경고’야 그냥 물탱크 한번 뺏다 끼우고 동작버튼만 눌러주면 어쨌거나 작동은 됐지만, 가열 및 건조가 되지 않는 건 도저히 A/S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건조기능이 고장난 건조기는 더 이상 건조기가 아니니까.


A/S 접수를 했더니 다음날 A/S기사가 연락을 해 왔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 건조기 모델 말인데요. 원래 콘덴서 자동세척 가능을 탑재해서 판매한 모델인데 그 기능이 조금 부족해서 콘덴서 세척이 완벽하게 되질 않았거든요. 그래서 전량 무상으로 콘덴서 분해 세척을 해드리면서 세척기능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코스를 추가해 드릴 수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동안 이슈가 되어서 뉴스에 자주 나왔었는데, 막상 서비스 받으려니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걸 이번에 수리하는 김에 받아야겠다 싶었다.


“아. 그런 거라면 당연히 받아야죠. 이번에 A/S하실 때 함께 해주시는 건가요?”
“죄송하지만 접수하신 고장에 대한 수리 부분은 현장에서 가능하지만 콘덴서 청소와 업그레이드는 공장에서 분해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작업이라서요. 제품을 저희가 일단 수거한 다음에 공장에서 수리하고 나서 다시 배송해서 설치해 드립니다. 대략 4~5일 정도 걸린다고 보시면 되고요.”


이런, 고장난 시기도 미묘하더니, 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어쩐지 미묘했다. 평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빨래를 하는 데, 날짜를 아무리 잘 맞추어도 최소 한번 이상은 건조기 없이 빨래를 말려야 하다니. 게다가 이번에 건조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아직 말리지 못한 빨래가 그냥 물에 담궈진 채 그대로 있으니 최소 두 번 이상은 건조기 없이 빨래를 말려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생각만 해도 무척 성가시고 번거로운 일이 될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고장 난 부분만 수리해서 쓸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분이 좀 많이 찝찝했다. 많은 사용자들이 이미 불만을 제기했고, 제조사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결함이라 판단해서 무상수리를 하고 있다는데, 문제점을 놔두고 그냥 쓰려고 생각하니 마치 엔진점검(Check Engine) 경고등이 들어온 채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온갖 먼지들이 콘덴서에 엉겨 붙어서 건조효율을 떨어뜨리고 기계 수명을 깎아먹고 있을게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해야 할 분해 청소라면 기왕 다른데 고장 나서 수리할 때 한 번에 해 치우는 게 속편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기계란 가급적이면 분해를 적게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머뭇머뭇 잠시 고민 좀 하다가 결국 공장에 입고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미처 건조하지 못해 물에 담가둔 빨래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했다. 다시 헹궈서 전통적인 방식, 즉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널기 시작했는데 널다보니 예전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은 물리적 공간부터 부족했다.


잘 쓰지 않는 베란다에는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 짐을 어느 정도는 치워야 고정식 건조대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빨래가 많은 날 속옷이나 양말 등을 너는 데 썼던 접이식 건조대는 건조기를 사면서 바로 내다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될 진 그땐 몰랐다. 심지어 빨래 너는데 썼던 세탁소 옷걸이들도 상당량을 내다버려서 옷장에 있던 옷걸이들을 좀 빌려와야 할 정도였다.


나의 삶이, 그 공간이, 빨래하는 방식이 이미 건조기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확신한다. 건조기를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이걸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것은 세탁기를 산다면 반드시 같이 사야 하는 집안의 필수 가전이라고 할 만큼 정말 편리하다. 빨래를 시작해서 끝내는 일을 다음날까지 연장할 필요 없이, 단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그 스피드한 쾌적감과, 날씨 상관없이 언제든지 빨래를 시작할 수 있는 그 편안함이란. 지금껏 계속 자연건조를 해 왔다면 모를까, 이미 나도 그 맛을 보아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건조기가 없는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빨래는 세탁기가, 빨래를 말리는 건 건조기가 해야한다. 반드시.


나의 이 확고한 신념을 듣고 있던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했다.

“오빠, 그럼 만약에 제주도 한 달 살기처럼 나름 긴 여행을 갔는데, 막 시골집이라서 세탁기도 없고 건조기도 없으면 어찌할 거야? 그럴 때는 그냥 손빨래해서 빨래줄에 너는 거야?”
“처음부터 그런 곳에서 한달 살기 같은건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걸? ㅋㅋ"
"아니, 가정을 해보는 거잖아. 빨래를 안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인데, 세탁기가 없는 환경이라면, 그래도 손빨래를 안 할 건지 궁금한 거야.“
“응. 장담컨대 안 해. 한 달 정도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떻게 한 달 동안 빨래를 안 하고 살아?”
“ㅋㅋㅋㅋ,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 난 정말로 빨래를 한 달 동안 안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뭐어? 언제?”

그 때의 일이다. 병역특례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던 나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그게 내 군대생활의 전부였다. 바로 그때, 나는 속옷, 양말을 포함해서 빨래를 단 한 번도 안하고 버텼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나에겐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4주 훈련을 받기위해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게 무려 12월이었고, 샤워를 위해 일주일에 딱 한번, 1인당 약 5분 정도 온수를 쓸 수 있었던걸 제외하면 막사에서 머리를 감을 때도 찬물로 감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빨래를 위해 제공될 온수 따위는 없었다. 입소 후 처음 머리를 감아보고 나서야, 나는 한 겨울에 찬물로 손빨래를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막사 한켠에 세탁기가 한 대 있었지만 그건 나 같은 훈련병들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조교들(기간병들)만 쓸 수 있는 물건인지라 사실 없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그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로서는 빨래라고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세탁기를 줘야 겨우 겨우 해볼 만한 빨래를 손으로, 그것도 얼기 딱 직전의 찬물로 하라는 건, 하지 말란 소리 아닌가.


그래서 포기했다. 빨래를.


나에게도 계획이 있었다. 4주라는 그 기간은, 꼬질꼬질 한 채로 그럭저럭 견뎌볼 만한 ‘애매한’ 기간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겨울이라서 여름보다 땀도 덜 나고 냄새도 덜할 거라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무엇보다 4주만 입으면 그 옷을 다신 입지 않아도 됐다. 자대배치를 받아서 그 옷들을 계속 입어야 했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찬 물에 손을 담그고 빨래를 했겠지만, 4주만 잘 견디면 원래 입고 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집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이런 계획에 나는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기꺼이 더러워질 용기였다.


그 당시 지급받았던 내의와 양말을 세어보니 나름 충분한 양이었다. 한 장으로 일주일쯤(?) 참고 견딘 다음, 헌 속옷과 양말을 버리고 새 걸 꺼내서 입으며 버텼다. 대층 3주일 쯤 지나자 견디지 못한 옆자리 동기가 한소리 할 지경이 되었다.


“아, 냄새나! 제발 가서 양말도 좀 빨고 발도 좀 씻어!! ㅋㅋㅋ”


그 이야기를 듣고, 알아차렸다. 그 당시 나는 머리 감는 건 고사하고 매일 발 씻는 것도 때려치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이 한번 선을 넘어버리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차피 오늘 신은 그 양말, 내일 다시 또 신을 텐데 발은 씻어 뭣하냐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동기의 구박에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퇴소하는 그 날까지 그 엉뚱한 신념을 지켜 꼬질꼬질하게 지내고 나왔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미안했다, 옆자리 동기여.”


몇해 전, AI와 4차 산업혁명이 한참 화두가 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었던 몇가지 담론중에 트랜스휴머니즘이 있다.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와 기술을 적극 활용해서 인간을 개조, 좋게 말해 업그레이드 하자는 사상이다. 수명 연장을 위해 장기를 기계로 교체하거나 지능향상을 위해 뇌에 컴퓨터칩을 박아 넣는다던가 하는 SF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하다보니 나름 관심을 갖던 분야였지만, 건조기가 고장 나고 군시절 경험까지 되돌아 본 지금에 생각해보면 사실 그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영생을 위해 장기를 기계로 교체해 본들 기계는 언젠가 결국 고장 나게 되어있고, 수리하거나 교체를 하면 된다고는 해도 건조기가 고장 나서 고작 며칠 못쓰게 되어도 이렇게 불편한데 몸에 부착해서 내 몸의 일부였던 그 기계가 고장 난다면 그 불편을 과연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게다가 트랜스휴머니즘의 목적이 인간 ‘능력’의 향상에 있다고 본다면 나의 ‘빨래 능력’이 세탁기 덕에 손빨래 할 때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매우 적은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향상된 마당에, 그 기계가 내 몸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세탁기가 존재함으로써 날것 그대로의 내 몸은 일종의 ‘손빨래 고자’ 상태가 되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내 손은 손빨래를 위한 동작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지만, 21세기도 벌써 1/5이나 지난 이런 미래지향적 시대에, 그러니까 대부분의 가정에 세탁기가 있는 시대에, 굳이 손으로 빨래를 해야만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심리적으로 완강히 저항하는 ‘심리적 고자상태’라 할까. 한마대로 ‘세탁기 놔두고 이게 뭐하는 짓?’을 속으로 외치며 드러눕는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간의 손빨래 고자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내 어머니만 해도 세탁기가 없던 시절을 살았기에 손빨래를 매우 능숙하게 하던 세대였고, 어릴 적부터 그걸 보고 자라온 나는 어쨌거나 손빨래를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이지만 마음으로는 거부하는 세대이다. 그러니 요즘 자라는 어린 세대들은 손빨래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을 테고 세탁기 없이는 빨래는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세대가 될 것이다. 이제 이런 경향은 빨래 건조기까지 번지고 있다. 의식주에서 ‘의’가 이젠 저 두 기계 없이는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는 셈이니, 바야흐로 인간과 세탁기, 건조기가 융화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다행히 건조기는 말끔히 수리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빨래를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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