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빨래는 남편이 해야 한다

빨래편_ 나봉

by 김나현

편의 건조기가 고장났다. 그렇다. 그건 분명히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우리 집 빨래 담당은 남편이고, 나는 건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사실 빨래라는 가사 노동은 남자에게 더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웬 남녀차별이냐, 왜 빨래가 남자 몫이냐고 핏대를 세우겠지만, 훌륭한 빨래 노동자의 조건을 생각해보자. 일단 키 150의 단신의 팔다리가 짧은 내가 통돌이에 들러붙은 젖은 빨래들을 건져내려면 세탁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야 한다. 빨래 건조대는 다 내 머리 위에 있다. 이 문제는 드럼세탁기를 쓰거나, 자동식으로 내려가고 올라가는 건조대를 써서 해결한다고 쳐도, 어쨌든 젖은 옷가지는 꽤나 무겁다. 젖은 이불은 더 무겁다. 남자라고 무거운 걸 다 잘 드는 건 아니다, 그렇게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은 편견 속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남자가 근력과 힘에서 여자보다 센 건 팩트 아닌가. 내 주장은 남녀커플이 함께 살고 둘 다 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살림을 나눠서 한다면 역시 빨래는 남자에게 더 유리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옛날처럼 손빨래를 해야 한다면? 빨래를 빨래판에 치대는 힘이 빨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 힘은 역시 강한 어깨와 팔의 근력, 손아귀 힘에서 나온다. 만약 손빨래의 기술과 노하우가 전혀 없는 남녀에게 그 일을 시킨다면 과연 누구의 빨래때가 더 잘 벗겨져 있을까. 그 옛날 부부였던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가 함께 출연해 연인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화제가 됐던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 빨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니콜이 손가락으로 빨랫감을 대충 잡고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물에 넣었다 뺐다 한다. 그녀는 귀족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딸이라 단 한 번도 빨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톰이 뿅하고 나타나 “빨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빨래를 비누에 비비고 빨래판에 문지르고 물에 헹구고 마지막엔 손목힘을 이용해 꼭 짜는 기술을 선보였다. 니콜의 눈에도, 화면 밖에 내 눈에도 하트뽕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톰은 투전판에서 연일 KO승을 하는 타고난 싸움꾼으로 나오는데, (경기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웃통을 벗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잘근잘근한 미세 근육이 돋보이는 ‘근육미남’으로 나온다. 그러니 그의 빨래는 그렇게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비록 근육미남은 아니지만 세탁기가 있으니 빨래의 성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집안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빨래 노하우 따윈 없었다. 세탁기에 옷과 물과 세재를 넣고 돌린다.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렇게만 빨래를 하니 내 팬티가 깨끗하게 빨아지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그랬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왜 본인과 딸들의 속옷만큼은 애벌빨래를 고집했는지 감을 잡았다. 왠지 내 팬티까지 남편에게 손빨래 맡기는 게 미안해서 내가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나는 빨래감을 모아두고 계속 미루기만 했다. 더러워진 팬티가 죄책감처럼 쌓여갔다.


사실 팬티를 스스로 빨지 않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건 어렸을 때 기억 때문이다. 엄마 친구 아들이 과학고를 다녔고,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부모가 주말에 한 번씩 아이들의 빨래감을 수거하러 가거나, 아이들이 빨랫감을 들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그 엄친아는 자기가 알아서 빨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효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화제의 끝에 어떤 여자애 하나가 뒷담화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글쎄, 생리 묻은 속옷까지 집으로 그대로 들고 온다잖아.”

“공부만 잘하면 뭐해. 자기 속옷 하나 제대로 빨지도 못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보기에도 고등학생 정도 된 여자아이라면 그 남사스러운 것은 자체적으로 손세탁을 하든가 해서 해결했어야지, 거기가 자기 집이었으면 모를까, 그걸 어떻게 기숙사 밖으로 들고 나올 수 있냐는 것이다. 한편으로 피터지게 경쟁해야 하는 그곳에서 1분 1초라도 아끼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면서 이해했지만, 어쨌든 나에겐 그 피 묻은 팬티 이야기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피 묻은 팬티는 가족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한 것이구나, 그런 건 혼자 해결해야 하는거구나, 그런 건 수치스러운 거구나.


생리가 많은 날은 침대에 잘못 누워 있으면 피가 생리대 밖으로 샜고, 생리 주기가 너무 불규칙해서 생리 첫날은 어쩔 수 없이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그 과학고의 여자애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나도 공부하느라 바빴다. 피 묻은 팬티를 바로 빨래통에 넣지 못했다. 이 부끄부끄한 것들은 내가 손빨래를 해야겠다고 옷장 한 구석에 모아 두었다가...바로 까먹어 버렸다. 결국 이 망할 귀차니즘과 단기기억상실로 방치된 팬티들이 엄마에게 적발됐다. 결과는 뻔하다.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났고, 혼났다는 사실보다 부끄러운 일이 들켰다는 사실이 더 참기 힘들었던 나는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하려고 했어!”

바로 혼난다.

“그럼 바로바로 했어야지!!”


그때의 나는 지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습관과 성격이란 정말 경이롭게 일관적이다. 오죽하면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생리 묻은 피가 한없이 부끄러워 옷장 한 구석에 몰래 숨기는 소녀였다면, 이제 사람이 살다보면 생리혈을 좀 묻힐 수도 있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어른이 됐다는 차이 정도? 하지만 귀찮아서 미루는 습관은 여전했다. 결국 나의 귀차니즘이 빨래를 빨리 해치우고 싶은 남편의 성질머리를 이겼다. 그가 문제의 팬티를 들고 세탁기 앞으로 가져갔다. 세탁기 앞에서 내 속옷을 비비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해서 말을 걸어본다.


“미안~~타, 이런 손빨래까지 시켜서.”

“뭐 이건 손빨래도 아니지, 손빨래는 자고로 빨래판에 대고 막 비비고 문대야하는 거지.”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근데 이것도 좀 신경 써서 빨아야 하는 건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니트를 쓰윽 내민다. 남편이 버럭 한 소리를 한다

“진짜!! 니트 좀 안 사면 안 돼?!”


미안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소중한 보물인 냥 니트를 꼭 끌어안고 슈렉 고양이의 빙의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남편에게 애걸한다. 그는 내 니트를 따로 모아 ‘섬세코스’로 돌린 후 빨래 건조기 대신 베란다의 건조대에 자연 건조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니트 옷이 망가지는 게 싫은 내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그래도 결혼하고 나서 니트를 사기 전에 이게 정말 필요한 옷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해서 옷의 가짓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최대한 빨지 않는다(!)는 나름의 비법으로 그의 노동을 줄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빨래는 세탁기를 돌려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건조도 꽤나 힘든 일이었다. 건조기가 우리 집에 들어오기 전, 남편이 빨래를 말리기 위해 얼마나 애먹었는지를 생생히 기억한다.


큰일 났어, 빨래가 마르지를 않아.



장마철이었다. 남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틀 동안 널어놔도 마르지 않는 빨래 때문이다. 사실 빨래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던 나는 남편의 애로사항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두면 마르겠지, 뭐 이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들어오니 드레스룸이 닫혀 있었다. 문을 여니 뜨거운 열기가 훅 들어왔다. 방에는 제습기가 돌고 있었다. 그는 그 방을 건조방으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가장 작은 방에 빨래 건조대를 펼쳐놓고 며칠 동안 마르지 않는 빨래를 널은 후, 제습기를 돌려 말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불 빨래는 빨래 그 자체보다 말리는 일 때문에 고역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젖은 이불을 베란다 건조대에 주렁주렁 매다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저렇게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빨래 건조기를 사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이미 가스식 빨래 건조기를 설치 할 수 없다고 판정을 받았다. 20대 초 어학연수로 갔던 캐나다에서 처음 만난 가스 건조기는 완전 신세계였다.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는 게 너무 편했고, 건조기에서 막 나온 옷의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건 한국 가서도 꼭 사야한다!’ 라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 빨래 건조기 문화는 생소했고, 막상 한국에 돌아가니 같이 사는 엄마가 나 대신 빨래를 해주니 빨래 건조기는 내 기억에서 잊어졌다. 10년 뒤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집안에 놓을 가전을 하나하나 사면서 인생 최대 소비에 빠져 있을 때 빨래 건조기가 생각났다. ‘맞아, 그건 꼭 사야해!’ 그때까지 남편은 그걸 꼭 사야 되냐는 반응이었다. 내가 엄청나게 좋다고,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사야한다고 해서, 가스 건조기를 설치를 위해 업체 기사가 방문을 했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의 좁은 베란다는 건조기를 설치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장소도 협소했지만 벽에 구멍을 내야지만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파트 외벽에 구멍까지 뚫는 건 아닌 거 같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번 빨래 건조에 사투를 벌이는 남편을 보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쯤에 사무실 동료 직원에게 전기 건조기가 생각보다 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전기 건조기라 하면 드럼세탁기의 액세서리처럼 달린 건조 기능처럼 허접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새 기술이 발전한 건지 건조도 잘 되고, 전기료도 많이 안 나오고, 실내에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단점은 가스건조기보다 건조시간이 길고 시끄럽다는 건데 그건 방에 설치하고 문을 닫아놓으면 잊을 수 있는 문제일 것 같았다. 내 비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는 약속은 안했지만, 집안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과감하게 전기 건조기를 질렀다. 회사에서 제공한 내 복지 포인트로 말이다. 이 물건이야 말로 우리 가족의 복지를 위한 일이었다.


건조기가 들어오고 빨래 노동 시간은 확 줄었다. 빨래-건조-개기라는 일련의 작업 과정을 하루만에 해치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날씨 상관없이 언제든지 빨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은 건조기를 정말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자기도 모르게 점점 정이 들었나 보다. 가성비와 효율을 사랑하는 그에게 건조기는 사랑에 빠지기에 딱 적당한 아이템이었다. 그런 건조기가 고장 나다니, 남편에게는 비상사태였을 것이다. 수리를 위해 건조기가 며칠 공장에 들어갔고 남편은 허겁지겁 집안 곳곳에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다시 건조기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성공적으로 빨래를 말리자 행복해했다. 일 잘하는 동료가 휴가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자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대직자의 후련함 같았다. 어쨌든 그것은 일상을 다시 찾은 사람의 안도감이었다.


이제 사람의 손의 형태를 가진 로봇의 출시돼서 빨래 개기와 다림질까지 해준다면, 인간은 빨래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남편이 야무진 솜씨로 각 맞춰 수건을 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림질을 하는 모습 말이다. 정말 사랑스러운데, 본인은 절대 모를 것이다. 특히 수건을 탁 펼치면서 팔에 근육이 약간 불룩해지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괜히 내 마음도 봉긋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수 이적을 좋아하고 그가 만든 ‘빨래’라는 노래도 참 좋아한다. 빨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별노래지만, 어쩌면 그가 빨래를 하면서 이 노래를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대가 날 떠난 건지, 내가 그댈 떠난 건지 일부러 기억을 흔들어 뒤섞어도……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는 역시 빨래같이 멍 때리는 일을 하면서 나오는 법 아닐까. 이별 노래를 쓰면서 빨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연상한 거 하면 그만큼 빨래에 익숙한 게 틀림없을 것이다. 역시 빨래는 남자가 해야 한다. 탐 크루즈도, 이적도, 내 남편도……모두 사랑스럽다.



+커버이미지_https://kr.freepik.com/photos/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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