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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Jul 20. 2021

지극히 사적이지만 위대한 꿈을 이룬 이야기

<2인 가족의 티스푼은 몇개가 적당한가> 출간


2인 가족의 티스푼은 몇개가 적당한가 / 김나현 에세이


브런치에 연재했던 '딩크로운 삶'이 <2인 가족의 티스푼은 몇 개가 적당한가>로 출간했습니다.


이 세상에 제 책이 나오다니, 저는 요새 하루하루 들떠 있어요! 그도 그런 게 작가가 되는 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소망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니까...정말 믿을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물론 작가가 됐다고, 꿈을 이뤘다고, 제 생활이 당장 달라진 건 없어요. 그래도  첫 책을 냈으니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고,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 같은 게 생긴 거죠. 당장 소박한 꿈은 2쇄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어렸을 때부터 글이라는 매체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제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를 설명해주는 매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이미 프로 짝사랑러여서 혼자 설레고 실망한 적이 많았는데, 그때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라는 책을 눈물콧물을 흘리며 읽었어요. 아니,  그 소설 속 문장들이 구구절절 내 마음인 거잖아요.  


그 중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구절이 있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같은 고향에서 자란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인데, 이들은 계속 엇갈리는 사랑을 해요.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막 속 야간 비행사 이야기를 해줍니다.


사막에 추락한 야간비행사가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사막 한 가운데서 밤을 맞이해요. 그가 무서운 사막의 밤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일이었어요. 그 비행사는 방향 감각을 다 잃은 와중에도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가는 방향이 저쪽일거라 생각하고 머리를 고향 쪽으로 두고 누워서는 밤새워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버텨냈다고......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렇게 고백하죠.  


너는 내 고향이야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삶 속에서 내가 머리를 둘 데야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이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찾던 사랑이 이렇게 고향 같은 사랑, 그러니까 흔들리고 방황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랑. 안식처 같은 사랑. 그런 사랑인데, 그걸 찾지 못해서 이렇게 텅빈 것 같은 마음이었구나. 모호했던 마음의 실체를 깨닫고, 사랑의 의미를 조금은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책은, 그리고 그 안에 누군가가 섬세하게 골라낸 문장은 한 사람의 마음에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일을 글로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되겠다고 국문과를 가긴 갔는데, 그때 짧은 단편을 몇 편 쓰긴 했는데, 그 이후로 소설을 잘 쓰진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당시 술자리에서 한 고학번 선배가 술주정처럼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네가 무슨 소설을 쓰냐. 마음속에 피 맺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소설을 쓸 수가 없어.”


글이 안 써질 때 그 말을 들으니까 기가 팍 죽더라고요. 왜 난 글을 시작하고 끝을 맺지 못할까. 이런 생각으로 너무 괴로웠는데, 진짜 내 인생 경험이 적어서 글이 안 나오는 건가 싶었어요 물론 반발심도 들었어요. 내 나름 마음의 상처가 있는데, 자기가 뭔데 나한테 상처 운운하고 그런담. 그렇지만 틀린 말 같지도 않은 게, 제 안에는 피처럼 토해낼 절절한 이야기가 없었어요. 내 인생 경험이 부족한거면 작가로서 상상력이나 재능이라도 풍부해야 할 텐데, 딱히 그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요. 나는 어쩌면 읽는 건 좋아하지만 작가로서는 재능과 소질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영부영 하다 보니 졸업할 때가 됐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딱히 취업준비를 해놓은 건 없고 그나마 교직 이수를 한 게 있어서 자의반 타의반 임용고시를 준비하게 됩니다.


이때는 인생의 암흑기였죠. 시험에 3번이나 떨어졌거든요. 시험이라는 당면 과제가 있었으니까 글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계속 떨어지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시험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고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건강도 회복하고 자신감도 찾게 되니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근데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의 고질적인 변명이 뭡니까? 항상 시간이 부족해요!!! 쉬는 시간까지 쪼개면서 글쓸 열정은 안 생기더라고요. 생계가 유지되니까 글쓰기가 절실하지는 않았던 거죠. 막연히 내 꿈은 작가다, 라고 믿었기에 신간 소설이나 신인 작가들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었지만 딱히 무언가를 실천하진 않았어요.


학원일을 6년 정도 하고, 그 이후 다른 직종으로 직업을 바꾸게 됐고, 결혼도 하게 됐어요. 이후에도 몇 번 소설을 구상하긴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호흡이 긴 스토리를 구상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제 더 이상 인생사 상처가 없어서 글 못쓴다는 말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연륜이 되니까 제가 놓인 상황과 제 성향을 객관적으로 알겠더라고요.


제가 알고 보니 용두사미 스타일이이에요. ㅋㅋ 처음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데 그걸 진득하게 끌고가진 못하더라고요. 호흡이 긴 이야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행하기 힘들다는 판단도 들었어요.  때마침 우리나라에 한창 에세이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잘 쓴 에세이에서 깊은 여운과 감동을 느꼈어요. 그럼 나도 한 번 써볼까 싶어서 써봤는데 이게 왠일이에요, 에세이 쓰기가 저한테 딱!! 맞는 거에요.


알고 보니 저는 제 인생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누구나 자신의 하나뿐인 삶은 소중하겠지만 애착의 포인트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게 돈일 수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저는 제가 꾸려나가는 일상에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일상을 해석하고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에세이 쓰기가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에세이야말로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 저의 첫 에세이 <2인 가족의 티스푼은 몇 개가 적당한가>입니다. 이 책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결혼-출산이라는 과정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 제 이야기입니다. 마치 당연히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통념에 의문을 품고 내가 정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해요. 제 대답은 아니다 였어요.


저의 자유로운 영혼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즉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를 선택했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돈뿐만 아니라 내 시간과 에너지의 문제였죠. 결국 저는 인생에서 나의 성장에 시간을 쏟기로 결정한 거죠. 여러 제목 후보 중에 “아이 말고 나를 키웁니다. 아이 말고 아이(I)" 이런 제목 후보도 있었어요.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나’를 선택한 여자의 행복하고 당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에요.


책에는 이렇게 예쁜 라니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내가 꾸린 2인 가족에 대한 사랑도 가득 담은 책이에요. 남편은 저와 닮은 사람이에요. 가성비와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하고, 서로 대화를 즐기고, 불교적인 허무주의를 가진 것도 비슷해요. 둘이 잘 만났죠. 편이랑 알콩달콩하면서도 때론 티스푼 하나를 더 살지 안살지를 두고 대토론을 펼치는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가족 이야기도 엿볼 수 있어요, 남편과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비법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약간 부부생활 가이드라인 같은 느낌도 있긴 한데... 저희 부부의 맛깔 나는 대화들을 읽는 재미가 있을 거에요.




요새 에세이 시장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누구나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쓸 수 있다면 출판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죠. 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 봐도 이 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저도 알아요. 보통 사람이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저도 정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틈틈이 천천히 2년 동안 쓴 것 같아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으로 따지면 20년만에 꿈을 이뤘으니... 정도면 대기만성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끝까지 꿈을 놓지 않고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쓰니까 어느 정도 읽어줄 만한 책이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앞에서 ‘깊은 슬픔’의 야간 비행사 이야기를 했잖아요.

너는 내 고향이라고,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삶 속에서 내가 머리를 둘 데라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글쓰기야말로 제가 흔들릴 때마다 제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어요. 여러분에게도  마음에 품은 꿈이 있고 흔들릴 때마다 그 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요. 그게 언제든 출발만 한다면 늦은 게 아니에요. 일단 그곳으로 향해 간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럼 분명히 도착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제 책의 마지막 문단으로 마무리 할게요


어쩐지 나는 발에 꼭 맞는 웨딩슈즈를 신고 있다. 꽃길이다. 다시 한 발… 나는 위대한 성과를 이룬 위인은 아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저명한 정치인이 된 것도 아니고, 유명한 영화배우가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길 역시 위대했다. 다시 한 발… 내 한계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다는 것만으로 내 인생의 길을 스스로 꽃길로 만들었다. 또 한 발… 나는 그렇게 홀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났다.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딛는다. 이제 당신 앞이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나는 더 크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련한 석양빛 아래 당신은 우리 집 1층 베란다에 서서 나를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나는 다시 씩씩하게 한 걸음 내딛는다. 환하게 웃으며. 한 발… 한 발…….


# 한 문장... 한 문장... 우리 더 가까워 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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