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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Feb 12. 2021

요리가 취미가 된 시대에

명절에 꼬막무침을 먹으면서 하게 된 얕은 사색

반찬가게에서 남편과 설 명절에 먹을 음식들을 샀다. 동그랑땡, 꼬치전, 식혜, 잡채 등 반찬가게가 노릿노릿 기름지게 풍성하다. 그중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랐고 나는 꼬막무침을 선택했다.

꼬막무침을 보면 어렸을 때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해감을 위해 커다란 대야에 담겨있던 꼬막을 보면 괜히 설렜다. 엄마가 커다란 들통에 꼬막을 삶으면 비릿한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지면서 행복한 허기가 밀려왔다. 이윽고 저녁상에 양념장을 올린 꼬막을 보면 군침이 돌았다. 손질부터 완성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고 가끔 해주었기 때문에 더 맛있었나 보다.

이제 돈을 지불하면 이 복잡한 과정 끝에 탄생하는 꼬막 무침을 딱 한 끼 식사용으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해진 시대인가.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 편리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꼬막무침을 보면 어린 시절의 엄마 밥상이 떠오르는데 말이야, 요새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완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겠지?”
“그렇지, 아마 음식을 배달해서 먹은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이제 배달음식의 편리함을 맛봐 버려서 말이야, 요리는 취미로 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맞다. 우리 시대 어머니들에게 음식을 하는 능력은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기본 탑재 기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가정주부는 당연히 집에서 밥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면 된장국, 계란말이, 멸치볶음 같은 기본 집밥 음식을 얻을 방법이 없었을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반찬 가게와 식당에서 쉽게 음식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배달 음식이 몸에 안 좋다는 것도 이젠 옛날 말이 된 것 같다. 과거에는 배달 음식 종류가 피자나 치킨 같은, 매일 먹으면 몸에 안 좋은 음식들로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젠 집밥부터 시작해서 유기농 샐러드까지 배달되니 오히려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세상에서 직접 요리하는 건 이젠 취미의 영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음식 만드는 영상을 보는 사람의 심리는 그 과정 자체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예쁜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하나의 그림이 스케치되고 채색이 올라가면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요리 영상을 보면서 요리 비법이나 지식이 나와도 그렇구나, 하면서도 직접 써먹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료를 썰어내는 그 빠른 손놀림에 감탄하고, 무언가를 볶고 구워내도 프라이팬 밖으로 음식 하나 흘리지도 않는 그 비현실적 정갈함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지막에 음식의 컬러를 고려해 화룡점정처럼 예쁜 데코까지 더해지면 그 미적 쾌락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한 편의 음식 영상을 시청하고 이제 주방에 가서 요리를 해볼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켜서 배달앱을 켜고 뭐 먹을지를 검색한다.


이제 소개팅 같은 걸 나가면 “제 취미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운동입니다” 말하는 것처럼 “제 취미는 요리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상대방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인간의 직업 중 하나가 요리사였다. 그만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점점 다른 사람 혹은 미래에는 기계가 해주고 있는 시대에, 그러니까 내가 하기엔 귀찮고 누군가가 해주는 게 당연해지고 편리해진 시대에, 그리하여 음식값을 지불해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 요리를 잘하고 좋아한다는 건 무형문화재처럼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식구들을 거둬 먹이기 위해 매일 삼시세끼 식사를 준비했던 엄마가 훗날 나 같은 자식에게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새 글을 올리며 인사드립니다.

작년 가을부터 업무가 바뀌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예전에 썼던 글들을 모아 출판을 진행하게 되면서

이렇게 두 계절이나 지나버렸네요 ㅜ ㅜ 

다시 숨을 고르고 일상의 생각을 담은 글을 종종 올려볼까 합니다.

모두 맛있는 거 먹고 나서 배부르게 행복한 명절 되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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