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리뷰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가수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해서 뻔한 줄거리일 줄 알았는데, 뻔하지 않더라."
영화가 끝나고, 우연히 듣게 되었던 다른 관객의 영화 평이었다. 이 분뿐만 아니라, 극장을 나서면서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았을 때 '영화가 예상과 달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마다 예상과 달랐던 포인트가 다를 것이고, 예상과 달라서 좋았던 사람도 있을 테고, 예상과 달라서 별로였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라서 좋았던 관객의 입장으로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보려 한다.
예상과 달랐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정보를 알고 가지는 않았다. 일단 '더 스미스'라는 밴드를 몰랐고, 이 영화가 '더 스미스' 관련 음악 영화라고 하길래 보러 가기 전에 더 스미스의 음악을 몇 곡 들은 게 전부였다. '더 스미스'라는 밴드를 아예 처음 접한 입장에서, '더 스미스'가 어떻게 탄생된 밴드인지 알 리 만무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면 극적인 스토리가 있을 테고, 그렇다면 흔히들 그려내는 성공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그려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어찌저찌 음악을 계속 해 나가는 청년. 그러나 음악인이 되는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배신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포기할까 고민도 많이 하지만, '아니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마음으로 만든 음악이 대박이 난다. 긴 무명 생활을 딛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뮤지션이 된 주인공,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그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에 대한 별 정보 없이, 내가 예상했던 스토리는 이러했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성공한 인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고난, 역경 - 갈등 - 갈등 해소 - 성공'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 않던가. 그렇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던 성공 이후의 이야기가 없다. 포스터에서도 '탄생 비하인드'라고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더 스미스'가 탄생하기 이전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더 스미스'를 결성하기 이전의 스티븐 모리세이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찌질의 정석, 그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성공 이전의 고군분투기라고 하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식의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씩씩한 캔디형 주인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리세이는 캔디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인물이다. 같이 밴드할 사람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지만, 기껏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을 구했더니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도망치고,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일절 피하며, 직장에서는 제대로 처리하는 일이 없어 매번 비난만 받기 일쑤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과는 반대로, 이 영화 속에서 모리세이의 비범함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흔히 말하는 '찌질이'의 전형에 가깝다. 그 와중에 일을 빼 먹고 몰래 쓰는 일기에는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은 다 멍청하다' 같은 글을 적고, 한 번의 성공적인 공연으로 이미 스타가 된 것처럼 으스대면서 그러한 찌질함은 절정에 달한다. 관객들이야 모리세이가 음악적 측면에서 재능이 있었음을 알기에, 그런 모든 찌질하고 자아도취적인 장면들에 웃음이 난다. 그렇지만 그의 재능을 알 리 없는 주변인이었다면, 그는 그저 한심한 찌질이에 불과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저 한심한 찌질이를 넘어, 허황된 꿈을 꾸는 허세 가득한 겁쟁이로 봤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면 주인공에 대해 굉장한 반감을 품었나 보다 할 수도 있는데, 스티븐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반감보다는 공감에 가까웠다. 원래 완벽하고 흠 없어 보이는 인물들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성공 신화를 다룬 인터뷰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스티븐의 찌질함은 좀 심하다 싶은 포인트들도 있었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찌질함이다. 꿈을 꾸는 청춘이라면 특히나 더 공감할 법한. 나와 같이 공부하고,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솔직히 속으로는 내가 좀 더 낫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대기업 혹은 고시에 합격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엄마가 옆집 누구는 어디 붙었대더라, 하면 건성으로 대답하고 괜히 그 회사 광고를 보며 트집잡는 그 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면,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그저 평범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인간처럼 여겨진다. 남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특별하게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에게는 어려운 것만 같은 시기가 온다. 더 이상 내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향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시작 방법조차 모르겠을 때, 이렇게 사느니 인생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이 영화는 무기력과 우울로 가득찬 그 긴 여정을 굳이 과장하지도, 축약하지도 않고 찬찬히 그려나간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한
성공적인 공연 이후, 모리세이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쉽게 스타덤에 오를 줄 알았지만, 삶이라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함께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빌리'만이 캐스팅되어 성공 가도를 달리고, 모리세이는 별 볼 일 없는 백수로 남았다. 그것도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어떤 것을 시작할 의지도 남아 있지 않은 백수로. 자신은 천재라고 믿으며 자신감이 넘치던 모리세이는 사라지고,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는 모리세이만이 남았다. 영화는 그 무기력하고 우울한 과정을 꽤 긴 시간 동안 그려내는데, 그 과정을 지켜 보는 마음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음악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잔잔하게 전환되는 장면들도 좋아서, 보기에 편안하지만은 않은 과정들을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영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는 음악들이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걸. 그렇지만 처음 듣는 음악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음악이랄까. 음악과 영화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 영화가 편안했던 또다른 이유는, 결국 모리세이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지만,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남아 있었다. 내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질 때, 더 이상 내 자신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나도 믿지 못하는 나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기에, 그 사람들이 뻗어주는 손이 있었기에 모리세이는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주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건네는 위로가 너무나 따뜻해서, 절대 힐링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이 영화를 보면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 오직 너 자신이 유일한 너야."라고 말해주는 엄마와의 위로 장면은 압권.
더 스미스의 팬이거나, 잭 로던의 팬이라면 추천
극적인 사건이 딱히 없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다 보니, 호불호가 갈릴 법한 영화인 것 같다. 그러나 더 스미스의 팬이거나, 잭 로던의 팬이라면 굉장히 만족스럽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러닝 타임 내내 잭 로던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는 데다가, 클로즈업 씬도 많아서 배우의 표정을 잘 볼 수 있는 영화니까.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토록 내가 사랑했던 음악이 탄생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너무나 가슴이 벅찰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인사이드르윈'과 '언니네 이발관'이 겹쳐 보였던 영화라서, '인사이드 르윈'이나 '언니네이발관'이 취향이신 분들도 좋아할 만한 영화인 것 같다. 특히나 영화의 엔딩에서는 언니네 이발관-홀로 있는 사람들이 겹쳐 보였는데, 언니네이발관의 팬으로서 한 시간 반 동안 언니네 이발관의 탄생 비하인드를 접하고, 마지막 엔딩에 '홀로 있는 사람들'이 흘러 나오면 얼마나 소름 돋게 좋을까, 싶었다. 더 스미스의 팬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감정이입해 보았을 때 더 스미스의 팬들이라면 만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스미스의 팬이나, 잭 로던의 팬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삶이 너무나 무기력하거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자꾸만 의심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스티븐 모리세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한 청춘의 성장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언제나 에너지 넘치고, 백 번 넘어져도 백한번 일어날 수 있지' 식으로 청춘에게 접근하는 영화가 아니니, 안심하고 봐도 좋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꿈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추천하고 싶지 않고, 그 어떤 것에 대한 열정도 없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