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le stay의 모든 것: [양평]용문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새벽을 지나 완전한 아침이 찾아오고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평소였으면 미적거렸을 아침, 오늘만은 달랐다.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라 개인 자유시간이 많았고, 퇴소 시간까지도 4시간 정도 남아 언니와 단둘이 차담을 나누기로 했다.
숙소 바로 밑에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카페인데, 음료를 비롯한 연꽃빵과 염주도 판매하고 있다. 집에 있을 가족들이 생각나 기념으로 연꽃빵을 구매했고 달달한 약과와 상큼한 오미자차를 주문한 후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고, 햇빛이 나무에 가려져 큰 그늘이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람들의 작은 대화 소리는 백색소음이 되었고 얕은 바람은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평소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 같았다. 바로 그곳에 내가 앉아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처음으로 언니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언니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으며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현실적인 취업, 공부, 금전 등이 해결되어야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끈기에 대해 강박이 있어, 내가 하는 일은 꼭 끝을 봐야 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결론은 도망이었고,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우울한 얘기 끝에 언니의 표정을 살폈고, '아뿔싸 내가 또 힘든 얘기를 해버렸어'라고 자책을 했다. 그런 내 불안함과는 달리 오히려 언니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보통 조언을 해주지 않나?' '나의 우울한 생각이 잘못됐다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지 못한 반응에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을 채웠다. 언니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활기찬 시작과는 달리 때려치웠을 때도
많았어요.
하고 싶어서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도 없고 나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일도 있어요. 그러다 자격증 몇 개 따게 되고, 그걸로
돈도 벌고 자연스럽게 내 적성을 찾아왔네요
시작하지 않고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좋아하는 일은 빛도 보지 못하고
숨어있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자신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걸 모두 하기에는 주변 눈치가 보여요. 돈도 많이 들고..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언니는 공감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저도 때로는 왜 이렇게 철이 없냐는 얘기 많이 들어요. 지금도 남들 다 돈 벌 시간에 나는 여기서 여유 부리고 있잖아요.
근데 확실하게 하나는 말할 수 있어요.
난 지금 행복하다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할 거고요.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왜 나는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지?' '내가 선택해서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갔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 물음과 동시에, 나를 감싸고 있었던 큰 바위 같은 압박감들이 깨졌다. 사실 그건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끈기가 없다고 생각한 내가 안타까워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 행복하고 싶어. 그렇게 이 여행은 결론이 났다.
도망은 끝.
꿈같던 시간이 끝나고 퇴소 시간이 다가왔다. 1박 2일은 너무 짧았고 아쉬움이 남은 우리는 용문역 앞에서 열리는 5일장에 가보기로 했다.
첫날에 보고 싶었던 액세서리 상점들, 파전과 막걸릿집을 구경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내려왔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곧 있으면 헤어질 것도 알고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도 알지만, 5일장이 기대돼 그 순간만을 즐기기로 했다.
5일장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에 파라솔로 가득했고 시장 특유의 음식 냄새와 다채로운 옛날 과자들, 꽃무늬로 가득한 의상들이 줄지어있었다. 우리는 그 수많은 음식들 중 무엇을 먹을지 심히 고민한 끝에 메밀전병, 수수부꾸미를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맛없을 수 없는 조합으로 역시나 맛있었다. 거기에 식혜까지 단짠단짠의 궁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였다. 그리고 용문장에는 유독 눈에 띄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메추리구이다. 이미 배가 찬 상태라 도전할 생각이 없었고 작디작은 메추리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면 지나쳤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소심했던 나의 선택에 후회를 하고 있다. 이후 핫도그부터 어포, 마늘빵, 뻥튀기까지 두 손 가득 구매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용문역으로 올랐다.
첫날, 용문역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두 손 가득한 음식을 가족과 함께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망쳤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들뜬 글들을 정리하면, 수많은 실패 끝에 이곳으로 도망쳐왔지만 이곳에서의 모든 일들은 행복했다. 그리고 진정한 '쉼'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전에 '쉼'이라고 생각했던 독서, 뒹굴거림, 친구들과의 만남은 나를 회복하도록 돕지 않았고 템플스테이 하루 속에 있는 산, 나무, 별, 바람, 차 마시는 여유의 '쉼'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과 목표를 선사했다. 지금까지도 지치는 여러 순간이 있었지만, 그곳을 생각하면 힐링이 되고 '또 도망치면 되지 내가 갈 곳이 있잖아'라는 생각으로 좌절 없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평소의 나라면 현실의 삶을 던져두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만 도망친 내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은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모두에게 감히 말해주고 싶다. '쉼'의 기준은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나만의 것을 찾았으면 한다. 도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종교의 부담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