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호캉스 중이다 이거야
남편과 아이 둘이 함께 원룸 살이 중이다. 화장실 포함 한 세 평 되려나? 작은 방 안에 네 가족이 부대낀다.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
큰 애는 모세 기관지염, 아직 세상에 나온지 2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이는 폐렴이란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는 어째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어려워졌다.
헬로우, 아임 죄인
시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기고 일하는 엄마로서 참 여러가지로 마음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나인투식스(9-6) 직장인이 아니라 밤낮없이 일하고도 '시간이 부족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스타트업 대표라서 죄스러운 마음은 배가 된다. 분명 아이가 건강하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엄마일텐데도 아이가 아프면 제일 죄인이 된다.
코미디언들이 이런 기분일까
이틀 내내 강남에서 동영상 촬영을 하는 강의 계약건이 있어 1박 2일로 출장길에 나섰을 때, 그것도 하필 한창 촬영 중이었을 때, 작은 애가 입원을 해야겠는데 동의하냐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후에도 앞 강의에서의 텐션은 똑같이 유지해야 한다. 나 홀로 촬영 부스에서 알아서 진행하는 강의 녹화 현장이다. (스탭들은 옆부스에서 상황 체크만) 실컷 찍다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울어버릴까. 차라리 호탕하게 웃어야 할까. 온통 아이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지만 약속된 건이니까 그냥 즙짜듯 짰다, 집중력을. 촬영을 어떻게 마쳤는지도 잘 모르겠다.
암쏘쏘리 벗 알러뷰
집에도 미안하고 업체에도 미안하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부여잡고 부산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사흘 밤을 평균 두 세시간 정도 잤을까. 분명 정말 피곤한데 KTX에서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을 약속하는 열차 안에서 나의 최선은 마음으로나마 달려가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와 보니 큰 아이와 남편은 이미 곯아 떨어졌다. 작은 아이는 병실에 시어머니와 함께 자고 있겠지 감사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안타깝고... 몇 가지의 감정을 꺼내야 당시의 마음이 설명이 될까.
동반입대도 아니고 동반 입원 웬말이냐
얼른 샤워를 하고 나와 큰 애 얼굴을 바라봤다. 애 얼굴이 벌겋다. 아뿔싸. 열이 난다. 같은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봤다. "미세기관지염이네요. 같이 입원치료를 하는 것이 권장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족 호카스 중이야 (호스피탈+바캉스)
소아과 병동은 낙상을 우려해 온돌방으로 된 1인실 구성이 많다. 그 방에서 두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한다. 첫째는 내년이면 학교에 갈 나이이다. 이제 혼자 이것 저것 꽤나 잘 해낸다. 문제는 세상에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인 20개월 꼬맹이였다. 병실에서는 그 에너지가 충분히 발산되지 않으니 병실 안에서도 부지런히 사부작거린다. 이제 고집이 생기는 때라 소리도 지르고 고집도 피운다. 수액을 맞느라 꽂아 둔 두 아이의 줄이 엉키거나 자다가 빠질까봐 몹시 신경이 쓰인다. 마침(?) 출근하지 않는 남편을 소환한다. 아니 그냥 거의 선택권이 없었다. 화장실 포함 한 세 평 되려나? 작은 병실 안에 네 가족이 부대낀다.
정신승리 감사일기
난 늘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고. 슬픈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냐고. 그저 웃어 넘겨보자.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의 내 기분과 느낌만이 잔상으로 남더라. 감사하자.. 감사하자...
- 잠 못 자며 일하던 나에게 일을 잠깐 놓게 해 준 시간에 감사하다.
- 남편이 3개월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런 일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다.
- 새삼 우리 집이, 우리가 돌아갈 곳이,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다.
- 폐렴을, 모세기관지염을 그나마 빨리 알게 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 병실에 아이 둘이 같이 있어서 서로 즐겁게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 오랫동안 못 봤던 아빠와 살 부대끼며 지낼 수 있는 시간이라 다행이다.
- 밤 새가며 일하는 엄마라 아이들 안고 자는 날이 적은데, 토끼 같은 내 새끼들 번갈아 안고 잘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덧.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4인 가족 완전체로는 처음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다 미뤄졌다. 입원 직후에 베트남 여행이라니... 얼마나 행복할까? (강제 만족 지연 효과가 따로 없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