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미안한 게 아냐
도서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은 내게는 행복한 출근길이다. 근무시간 중에 공식적으로 외부에 나갈 수 있고, 아이들과 다양한 장소에서 특색 있는 활동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이 주원이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날이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주원이는 1학년 때부터 도서부로 봉사했고, 매일 도서관에 오는 것을 좋아했던 친구다. 조용하지만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지내서 그런 아픔이 있다는 걸 잊을 때가 많았다. 주원이에게 뇌전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학기 초에 보건실에서 비공개로 배부하는 요양호자 명단을 통해서였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 뇌전증을 앓는 교회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내게는 익숙한 병이었다. 소년부 예배 시간 중에 앞에 앉아 있던 영리 언니가 뒤로 넘어가며 내 무릎 위로 쓰러져 당황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언니를 눕혀놓고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에 천을 끼우고, 발작하는 동안 손발을 주물러주는 교회 집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언니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깝게도 사춘기 시기가 찾아오면서 주원이의 뇌전증 증세는 하루하루 심해져만 갔다. 1학년 때는 거의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2학년 때는 교실에서 소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종종 생겼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큰 발작으로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었다. 점점 심해져 가는 뇌전증은 안 그래도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던 주원이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반 친구들이나 담임 선생님,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 자신이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부딪쳐도 분명 상대방이 잘못한 일인데도 주원이는 자신의 불편한 신체 때문인 양 사과를 반복하곤 했다. 큰 발작이 일어난 후 잘 걷지 못하는 자기를 도와주러 보건실로 온 친구에게도 사과부터 건네는 아이였다. 그런 주원이를 볼 때마다 참 속상했고 미안했다.
하루는 버스로 30여분 걸리는 거리의 중고서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점심을 먹고 다 같이 모여 버스를 타고 역 근처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중고서점까지 걸어가는 코스였다. 동아리 활동이 있기 이틀 전 주원이에게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몸 상태가 계속 안 좋아서 자신이 동아리에 가면 오히려 민폐가 될 것 같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니 애초에 자신이 빠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주원이에게 몸이 많이 안 좋으면 언제든 편히 쉬어도 되지만, 선생님은 주원이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가고 싶다고. 거의 마지막 활동인데 함께 하지 못하면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고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해서 금요일 오전까지 알려주라고 말해주었다. 주원이는 그러겠다고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금요일 아침, 주원이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최근에 큰 발작이 있어 아직 다리가 조금 불편한데,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도서부 아이들 26명을 모아서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때도 주원이가 제일 처음에 타게 해서 편히 자리에 앉아가도록 했다.
무사히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앞에 가는 아이들이 어수선해 질서를 잡으라고 하고 나는 뒤에서 잘 가는지 보면서 따라갔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을 건너 인도로 올라가는 곳에 턱이 있었는데 주원이가 그곳에 걸려 넘어지고 만 거다. 도서 부장에게 우린 천천히 갈 테니 다른 아이들을 인솔하라고 얘기하면서 얼른 다가가 주원이가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주원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샘~ 저 때문에 늦어지고 죄송해요." 하고 또 사과를 했다. 나는 아이의 바지에 묻은 낙엽괴 먼지들을 털어주면서 "주원아, 미안해하지 마. 이건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니야. 샘도 부딪치고 잘 넘어지고 그렇거든?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는 거고, 이렇게 같이 도와주면서 걸어가면 되는 거니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미안해하고 사과할 필요 없어." 했다. 그 말에 또 주원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주눅 들고 항상 미안해하느라 지친 주원이를 품에 꼭 안고 다독여주었다. "가다가 힘들면 말해. 잠깐 쉬었다 가면 되니까." 주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다친 곳이 없는지 공원 벤치에 앉아 확인했는데, 무릎이 약간 까졌고 멍이 들었지만 우리는 서로룰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 계속 걸었다.
활동장소는 계단이 많은 곳이라 혹시나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고서점에 올라가는 대신 주원이와 바깥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필요한 책은 친구들이 챙겨다 주었다. 또 다른 사고 없이 동아리 활동이 무사히 끝났고, 집에 가는 길에도 주원이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학교 앞까지 다시 데려다주었다.
시간이 흘러 주원이의 중학교 졸업식날이 다가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도서관에 있던 내게 주원이가 찾아와 "그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해요." 말했고, 우리는 마지막 졸업 축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근처 고등학교에 가서 다음 해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에 놀러 왔었는데,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진 모습을 보며 무엇보다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내 준 주원이에게 고마웠다.
몇 달 전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보며 물론 출근이 늦어진 사람들이 화가 난 지점들은 이해되지만, 장애로 인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욕을 먹게 되는 상황이 참 답답했다. 오죽하면 그 시간대를 택했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이렇게 불편함을 호소하고 이슈화가 되어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니 그런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조차도 미안해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현실이 참 답답하다.
우리 역시 언제라도 원치 않게 몸의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나 역시 양쪽 다리를 한 번씩 다쳐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도 걷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막상 지하철에 도착해서도 무리하지 않게 이동할 방법을 찾아 돌고 돌고 또 돌아야 했다. 장애인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지하철 역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들은 실제로는 가동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휠체어 리프트로 인한 추락사고로 1999년 이래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휠체어가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도 장애인이나 노인들보다 건강한 일반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는 그나마 에스컬레이터도 무용지물이고, 오로지 계단으로만 다녀야 하는 곳도 너무 많다. 한 걸음만 물러서서 남의 불편이 나의 불편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봐줄 수는 없는 것일까. 장애를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하면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는 일인 것 같다.
주원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장애나 신체적 불편함을 초래하는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었던 사람은 없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기본적인 이동할 권리조차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을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매사에 미안해하며 주눅 들어 있는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건 간에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가진 존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