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발!

by Pearl K

환한 아침햇살이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 너머로 들어왔다. 지윤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분명히 알람을 맞춰 두고 잠들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햇살 덕분에 알람보다 조금 일찍 깬 거였다. 잔뜩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지윤은 칫솔에 한 줄로 가지런하게 치약을 짠다. 경쾌한 치카치카 소리가 좁은 화장실 안을 가득 채웠다.


본래 지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부분 머리를 감는 거다.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마지막에 시원한 물로 헹구어 주면, 남은 잠이 달아나는 것은 물론 밤새 잠들었던 정신이 또렷해진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느낌이 좋다. 밤새 건조해졌던 머리카락이 청량하고 촉촉해진다.


머리카락을 꼭꼭 짜내어 수건으로 말린 후에는 드라이 타임이다. 따뜻한 드라이어의 바람이 두피와 젖은 머리의 잔 물기를 싹 골라내어 훑고 지나간다. 그다음엔 차가운 바람을 선택해서 머리카락 전체를 털어내듯 말려주면 미처 풀지 못한 지난밤의 남은 피로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한결 개운해진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 된다.


지윤에게는 오늘부터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되는 긴 휴가가 기다리고 있다.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거의 5~6년 동안의 남은 연차를 모두 모아 한 번에 쓸 기회가 생겼다. 막상 쉰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주변을 산책하며 소소하게 보낼까도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일단 정하고 나면 추진력이 뛰어난 지윤은 앞으로 주어진 한 달의 긴 휴가를 이용해서 1/3인 열흘 정도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관한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가 지윤에게는 오랜만에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눈이 반짝거리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택한 여행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포르투갈 등 남미 지역이었다. 평소에도 가 보고 싶었던 곳이고 특이하고 예쁜 건물들을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외에도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긴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 투어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 거기에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스페인의 도시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들을 담고 있는 건축물을 구경할 생각에 그녀는 살짝 설렜다.


어젯밤에 미리 캐리어에 필요한 짐들을 꼼꼼하게 싸 두었다.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스페인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의 전화번호도 따로 적어두었다. 환전도 미리 마쳤고 휴대폰 로밍 신청도 해 두었다.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바르셀로나 직항으로 이동하면 걸리는 시간은 총 14시간 10분. 날짜변경선을 지나기에 도착하면 바르셀로나 시간으로 출발한 것과 같은 날 저녁이 된다. 시차 적응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윤은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먼저 부쳐놓고 출국장을 통과한 후 안에서 보딩 타임을 기다렸다. 그녀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7개월간 남미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남미에 가겠다고 결심한 후로 추천받아 읽어보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곤 했다.


한참 책에 빠져 있는데 안내 방송이 들렸다.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B747, B747 항공편에 탑승하실 손님은 출국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탑승이 시작됩니다.” 지윤은 보던 페이지에 자석 책갈피를 꽂아 표시해 두고 책을 덮어 손가방에 넣었다. 크지 않은 손가방 안에는 꼭 필요한 여권, 신분증, 지갑 같은 개인 물건부터 안전한 여행을 위한 도구들까지 다 담겨 있다.


이어서 본격적인 탑승이 시작되었다. 길게 늘어선 줄 뒤에서 지윤은 티켓을 꺼내어 다시 한번 좌석번호를 확인했다. 오랜 시간의 비행을 앞두고 오프라인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음악 파일들도 미리 휴대폰에 담아 두었다. 승무원들이 친절하게 인사하며 안내해 준 덕분에 무사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잠시 후 기장의 인사말과 비상시 탈출요령 등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윤도 안내에 따라 안전벨트를 채웠다.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기체가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속력이 빨라지더니 귀가 먹먹해지면서 금세 비행기는 하늘 위에 도달했다. 지윤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짧게 계획했지만 준비하면서 그녀에게 설렘과 기대감을 주었던 곳으로 드디어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