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온 더 로드

by Pearl K

“하아아암~”


늘어지게 하품하고서 온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주위를 둘러보니 무언가 심하게 낯선 풍경이 보인다.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비벼보지만 황량하고 낯선 회색의 도시, 쓰레기통이 굴러다니는 뒷골목의 풍경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어제 분명 집에서 잠들었는데.. 도대체 뭐지?’


몸을 일으켰더니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가득하다. ‘웬 신문지?. 덕분에 따뜻하긴 했다만 이거 너무 노숙자 같은 거 아니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신문지를 가볍게 뒷발로 차 버렸다. 응? 자...자... 잠깐만. 뒷발? 나한테 뒷발 같은 게 왜 있지? 꿈인가? 황급히 골목을 둘러보다가 버려져 있는 거울을 하나 찾아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가서니 깨진 거울 사이로 낯선 얼굴이 비춰 보인다.


“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분명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들렸겠다. “믜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옹” 그렇다. 자고 일어났더니 놀랍게도 고양이가 되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되었다는 카프카의 책은 읽어봤는데 뜬금없이 고양이라니. 거기다가 따뜻한 곳에서 자고 알아서 먹이를 챙겨주고 화장실 사용 후 청결하게 모래를 골라줄 수 있는 집고양이도 아니고, 길고양이로 변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말인즉슨 천적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멋 모르는 어린아이들이나 사이코 같은 일부 인간들의 학대에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있으며, 먹이를 구하지 못해 쫄쫄 굶어야 하는 날들이 며칠이나 이어져야 할지 모르고, 날씨가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춥거나 더우면 춥거나 더운 대로 그 영향을 모두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로를 건널 때 로드킬 당할 위험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변신한 고양이가 꽤나 미묘(美猫)라는 것이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차롬 하게 떨어지는 샛노란 털에 이마와 등 쪽에 중간중간 섞인 흰색의 소용돌이무늬, 거기에 푹신푹신 젤리 같은 핑크 발바닥, 볼수록 신비로운 초록색과 파란색이 오묘하게 섞인 눈동자, 가르랑 거리는 애교 섞인 목소리까지. 인간일 때 보았던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열 배는 더 귀여운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은 안전해진 다음이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파악한 다음, 괜찮아 보이는 인간을 골라 간택하는 것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쓰레기가 뒹구는 골목부터 빨리 벗어나야 했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다른 길고양이 무리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공격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골목 끝으로 다가가 목을 쭉 빼고 쳐다보는데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하더니 사뿐하게 아래로 착지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온몸이 바라보기만 해도 부드러워 보이는 까만 벨벳 같은 털로 뒤덮인 눈부신 자태의 샴 고양이였다.


-야! 너 여기서 뭐 하냐. 여긴 내 구역이야.

-어? 미..미안. 네 영역을 침범하려고 한 건 아니야. 근데 여긴 어디야?

사실 나 길을 잃었어.

-길을 잃은 거라고?


까망이는 무엇을 알아내려는 건지 나를 한참이나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집요한 까망이의 시선에 당황하고 있을 때쯤 일종의 평가가 끝났는지 다시 나를 마주 보았다.


-원래 집고양이였던 건가? 목에 걸려있는 그 펜던트 그거 네 이름 아니야?

-내 목에 펜던트가 걸려 있..었지.


고개를 돌려가며 목걸이를 유심히 보았다. 펜던트에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은 로로. 불안했던 마음이 갑자기 안심이 되서일까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집사가 있구나. 어디선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집사가 있는 거구나.


펜던트의 뒷면에는 집사의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내가 사람이라면 당장 전화를 걸어 나를 데리러 오라고 했겠지만, 현재의 나는 인간의 말 같은 건 전혀 할 수 없는 평범한 고양이였다. '이왕이면 주소를 적어 놓을 것이지.' 방금 전의 고마운 마음은 잊고 집사에게 살짝 화가 났다.


까망이가 집이 어딘지 기억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로로의 집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일단 인간으로서 살던 곳이라도 찾아가 보아야 했다. 살던 곳은 종로구 청계천 근처라고 대답했더니, 낮은 쓰레기통부터 차례로 밟고 담장과 지붕 위로 올라가며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까망이를 따라 나도 무작정 위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고양이로서의 몸이 익숙하지 않아 무섭기도 했지만,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몸은 더 유연했고 점프력도 놀라웠다. 약간은 허둥대기도 했지만 지붕 위로 올라가니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청계천이 어느 방향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지붕 끝 라인을 따라서 쭉 가다가 저기 빨간 지붕 집에서 왼쪽 방향으로 넘어가. 다른 고양이들의 냄새를 따라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위에서 날아드는 새도 특히 조심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까망이를 뒤로 하고 지붕 끝 라인을 따라 청계천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었다. 뛰다가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기도 하고, 수많은 지붕들을 넘고 또 뛰어넘어 청계천의 수로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코앞의 돌다리만 건너면 인간일 때 내가 살던 주택가가 나온다.


설레는 마음에 사뿐사뿐 돌다리를 뛰어넘어 가다가 그만 부서진 돌다리 끝을 잘못 밟아 미끄러졌다. 탄성력이 뛰어난 고양이의 몸이라 금세 균형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손쓸 틈도 없이 온몸의 털에 물이 젖어 스며들었고, 나는 소용돌이 같은 물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뱅글뱅글 돌며 사정없이 물을 먹었다. '고양이인 채로 여기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깊은 물속에 몸이 끌려내려가며 눈앞이 점점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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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을 말하자면 죽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양이가 되었던 내 모습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것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후로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길고양이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극적인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그날 이후 동네 길고양이들을 위해 약간의 사료와 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지만 첨엔 멀찍이서 기다리다가 밥만 허겁지겁 먹고 사라지던 아이들이, 점점 더 가까이 내게로 다가와 마음을 열어주는 게 느껴져 요즘 참 고맙고 보람 있다.


얘들아, 밥은 내가 계속 챙겨줄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