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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평온한 상태로 잠든 지후를 따스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시선은 바로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불렀던 그분이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는 때로는 인상을 찌푸렸고 걱정이 잔뜩 담긴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더니 잠든 지후의 이마 위에 다정하고 따뜻한 손을 얹어주셨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내 사랑하는 딸 지후야, 이제 일어나서 돌아갈 시간이야. 우린 멀지 않은 때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걱정 말고 무사히 집으로 가렴." 지후가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에 그녀뿐이었다.
지후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분의 손길 덕분에 그녀를 괴롭게 했던 모든 고통과 아픔들은 이미 연기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 몸과 마음에 가득 찼던 스트레스와 피로감도 가뿐해져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품에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오색찬란한 열쇠도 그대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감사하고 편안하게 쉬었던 장소를 잘 정리해 두고, 상쾌한 기분으로 지후는 걷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곳이 어디인지는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걷고 있는 곳은 딱 보아도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정원으로 작은 풀 한 포기부터 커다란 나무까지 하나하나 생명력으로 충만했다.
게다가 동산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탐스러운 과실이 열려 있었지만, 천사 정예군으로 이루어진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까지 가는 길을 보호하고 있었다. 지후가 서 있는 곳은 태초의 공간 에덴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온몸이 떨려왔지만 두려움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외감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거지?'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지후 앞에 새하얀 옷을 입은 천사 하나가 나타났다. "저는 길 안내 가이드입니다. 찾으시는 곳까지 안내해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세요." 길 안내 가이드 천사와 함께 도착한 곳은 에덴의 남쪽 숲 끄트머리에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저 나무 아래에 난 길로 조금만 더 가시면 찾으시는 곳이 나올 겁니다. 안전히 돌아가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천사님."
꾸벅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떼려는 지후를 천사가 다시 불렀다.
"아!! 제가 깜빡하고 이걸 안 전했네요 "
천사는 지후에게 작은 꾸러미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뭔가요?"
지후가 물었다.
"가장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이름을 소유하신 분께서 윤지후 님에게 전달하라고 하신 물건입니다. 무엇인지는 돌아가셔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길. Von voyage"
친절한 미소로 배웅해 주는 천사를 뒤로 하고 지후는 에덴 남쪽 끄트머리의 커다란 나무 아래 난 길로 걸어갔다. 나무 아래에는 여러 입구가 있었지만 결국 오직 한 길로만 갈 수 있도록 연결되는 길이었다. 하나로 모인 그 길 끝에 평범한 나무 문이 하나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나무 문에는 십자가 모양의 나무가 조각되어 있었고 문 가장 위쪽은 특별한 무언가를 발라놓은 것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지후는 품 안에 소중히 보관하던 열쇠를 꺼내어 십자가 장식이 있는 나무로 된 문 손잡이에 꽂았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열쇠를 돌렸더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마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딸아,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모든 일에 잘 되고 굳세고 건전하기를 바란다." 다음 순간, 그녀는 익숙한 동네의 보도블록 위에 서 있었다.
오후 여섯 시가 좀 안된 것 같은 시간, 길 위에 선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화려하진 않지만 온 세상을 은은하고도 아름다운 빛으로 비추는 노을이었다. 해 질 녘의 노을을 보며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빛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던 모든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붉게 떠오르는 아침의 헤나 뜨겁게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뿐만이 아니라 매일 저녁 하늘을 물들이며 지는 해와 밤을 지키는 달빛까지. 결국은 세상을 가장 따스하게 비추는 것은 우리 곁에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의 빛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지후는 본인이 빛으로 걸어갔던 첫날로부터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돌아온 때는 정확히 그녀가 사라졌던 그날, 그 시간이었다. 지후는 소파에 편안히 앉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천사가 전해 준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지후가 받은 꾸러미 안에는 구체 모양을 한 스노볼 크기의 작은 빛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포장을 푸는 순간 작은 빛 덩어리는 그녀의 방 안에서 폭발하듯 팽창했고, 지후의 동네, 도시, 국가, 세계를 넘어 지구 전체에 자그마한 빛의 씨앗들을 퍼트렸다. 그래서였을까? 대한민국에 세 번째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고, 러시아는 승산도 없이 길게 끌었던 전쟁에서 패했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우크라이나, 지진으로 무너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복구를 위해 UN과 상임이사국들은 지원단을 파견했다. 또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 대응하고 환경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생각을 모으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은 한 뼘 더 빛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후는 자주 그 모험을 떠올렸다. 빛 속으로 어떻게 걸어갔었는지, 기억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와서 깨닫고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결국 빛을 향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도 평소처럼 지는 해를 감싸주는 노을이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각자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Good night.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