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동의어는 어쩌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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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주

2024년 10월

보통의 연애는 비급 로맨스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어떠한 계기로 서로 눈이 마주친다, 곧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수많은 엑스트라의 박수를 받으며 웨딩 마치, 그렇게 해피 엔딩. 그럼 규격 외의 연애는?

비급은커녕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삼류 러브 스토리도 되지 못했다. 새드 엔딩임을 알고 보는 영화다. 결국엔 눈물에 젖어 한껏 눅눅해진 버터 팝콘과 제 때 마시지 못해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스프라이트 한 컵만 남았다. 어느덧 막이 내렸다.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상영관을 퇴장하며 팝콘이랑 스프라이트는 재빨리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지만, 티켓은 차마 버릴 수 없어 들고 나왔다. 이거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억지스럽게도 한참을 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펼쳐 본 티켓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부분 부분 물기에 글자가 번져 어떤 영화였는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흔한 로맨스 코미디의 배우들처럼 서로에게 몰입하기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걸을 수 없었다. 신경 쓸 것이 항상 많았고 그래서 위태로웠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정작 서로는 뒷전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나아가니 어디로 향하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우리는 서로를 늪에 가뒀고 동시에 모른척했다.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은 서로를 위한 맞춤형 지옥이 되었다.

생각이 길어지니 점점 엉키기 시작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 실타래는 사방으로 빠져나와 나의 사지를 조여댔다. 숨이 막히니 살 길이 없었다. 사고가 극단으로 치닫는 건 당연했다. 그즈음의 우리는 묵인 끝에 서로의 목에 두꺼운 밧줄을 감았다. 그 누구도 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누가 당길지 눈치만 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엉망으로 꼬이게 되었을까. 변치 말자던 다짐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물방울이 튀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몇 방울 재에 물길이 되었고, 곧 그 물길은 바위를 갈라놨다. 영원을 말하던 네 입은 목소리를 잊은 지 오래였다. 변하지 않을 이유를 찾으려면, 글쎄, 진정으로 찾을 마음이 있었던가. 변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아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발에 챌 정도였다. 나는 쓰레기장 한 복판에 널브러져 종량제 봉투를 베개 삼은 너를 하루 종일 쳐다봤다. 나는 그게 네 죄책감이 되어 널 짓누르기를 내심 바랬다. 족쇄가 되어 네 발목을 엮어주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내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회만 잔뜩 머금고 과거를 반추하는 건 하나도 쓸모없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제자리에 멈춰서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붙잡을 수도, 매달릴 수도 없었다. 가만히 지켜봤다. 그게 어쩌면 널 떠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는 다 놓아버리고 떠난 뒤였다. 나만 글씨가 번져 알아보기 어려운 영화 티켓들을 꽉 쥐고 있었다. 두 사람분의 미련은 자연히 내 몫으로 남겨졌다. 고통에 일부러 널 탓했다. 허공도 쳐다보고, 엉엉 울어도 보고, 미친 듯이 웃어도 보고 억지로 지워도 봤는데, 도리어 그게 날 더 아프게 했다. 지나고 난 뒤에나 보이는 게 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게 있다. 이제는 온기조차 남지 않은 네 빈자리를 쓸어본다. 아, 이게 사랑이었다. 내가 널 많이 사랑했나 봐.

기억은 희미해질수록 되려 선명해졌다. 내가 사랑한 것들이 날 힘들게 만든 게 아니었다. 내 사랑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 내 목에 걸린 밧줄의 끝은 다름 아닌 내 손에 쥐여있었다. 내 사랑의 동의어는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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