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따가워
2025년 6월
나는 햇빛을 싫어한다. 머리통 제일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기억의 시작점부터 꺼내어 짚어보면 태어날 때부터 싫어한 게 맞을 거다. 햇빛이 나에게 남긴 건 어딘가 그을려 되짚기엔 무섭고 쓰라린 기억뿐이다.
일곱 살 즈음의 나는 어느 옷에든 반짝거리는 핑크색 공주 구두를 매칭하기 좋아했다. 유치원생이었던 나에겐 그게 소위 ‘최애 착장’이었다. 그날도 나는 휘황찬란한 패션을 고수하고 등원했고, 재수 없게도 그날은 전에 없던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유난히 해가 뜨거웠다. 하필이면 단체 야외활동이 있는 날이었고, 핑크로 겹겹이 휘감은 내가 다 녹은 스크류바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더위 먹어서 반쯤 죽어있던 나를 발견한 짝꿍 남자애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곧장 시비를 걸어왔다. 우리는 결국 엉망이 되어 구석에서 야단을 사이좋게 반 씩 나눠먹었다. 화해는 쌍쌍바로 퉁쳤다.
제법 역사적인 중학교에 다녔다. 다시 말하면, 낡아빠진 모양새를 대놓고 간직하고 있는 학교에 다녔다. 시설은 하나같이 별로였고, 최악은 모래바닥 운동장이었다. 봄가을에는 참을만했으나, 초여름만 되면 잔디가 깔리지 않은 운동장에서 햇빛에 잘 마른 흙먼지가 살려달라며 고함을 지르듯이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일주일에 두세 번, 황사나 다름없는 모래 폭풍 사이를 가로지르며 왕복 달리기를 하면, 점심 급식에서도 구운 모래의 감칠맛이 났다. 햇볕이 심한 날이 유독 고비였는데, 그런 날에는 운동장 모래가 바글바글 끓어올라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어 대형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체육 선생님은 유난히도 화가 많으셨는데, 꼭 그런 날이면 선글라스를 끼고 시원한 그늘에 서서 우리를 탐탁잖은 눈길로 쳐다보다가 오리걸음 따위의 기합을 주었다.
대학 때는 ‘코로나 학번’이라 첫 등교가 햇빛 쨍쨍한 여름이었다. 뉴스에선 ‘역대급 폭염’ 따위의 헤드라인이 잊을만하면 반복해서 나왔다. 첫 등교 이틀 전에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햇빛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고, 기본 옵션으로 설치된 블라인드를 꾹꾹 내려놓았지만 그럼에도 가릴 수 없는 열기가 방을 헤집었다. 나는 방 한 구석에서 더위를 잔뜩 주워 먹고 체하기 십상이었다. 등교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햇빛이 따가웠다. 학교 푸드코트에서 배부르게 먹고 수업에 갔더니 역시나 얹혔다. 이후 기억은 잘린 듯 없다. 아마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 방에 오자마자 소화제를 먹었을 거다. 당연히 에어컨을 켰겠지. 침대에 누워 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양산을 샀고, 아마 팔토시도 샀을 거다. 머지않아 기숙사 방의 작은 옷장은 시어서커 소재의 얇은 셔츠로 가득 찼다.
일련의 경험 끝에 나는 햇빛을 타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못 박았다. 지독한 햇빛 혐오의 끝에 올빼미형 인간이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해가 져야 무언갈 할 수 있는 징크스가 생겼다. 해가 떠 있으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무얼 해도 금방 지치기 쉬웠다.
어쩌다 보니 체코에 왔다. 학기가 10월부터 시작해서 9월 말까지 한국 늦여름에 잘 삶아지고 출국했다. 내가 체코에서 마주한 첫 번째 계절은 겨울이었다. 우와, 해가 저녁 5시면 졌다. 드디어 내가 이겼구나 싶었다. 햇빛과 시답지 않은 싸움에서 얻은 승리에 도취됐다. 컴컴한 아침이면 한국에서 챙겨 온 비타민 D 알약을 물로 삼키며 창문 밖을 향해 이죽거렸다. ‘야, 너 없이도 난 잘 살 수 있어.’ 학교에 다니며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체코에 여름이 왔다. 아, 착각이었다. 단 꿈에서 깨어나고 마주한 현실은 악몽이었다.
영화 ‘미드소마’에서 외지인들이 점점 이성을 잃고 마을에 동화되는 과정을 완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해가 새벽 4시부터 살며시 기어 나오더니 밤 10시가 되어서야 그 기세를 겨우 누그러뜨렸다. 여름의 체코는 문자 그대로 ‘작열했다.’ 커다란 암막 커튼을 사서 창문을 꼼꼼히 가려도, 조금의 틈만 주어진다면 그 사이를 거세게 파고들었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끈기 있는 존재를 본 적이 없다. 암막 커튼도 무용지물에 안대도 소용이 없었다. 지독하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다.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깊이 잠들 수 있는 때는 하루에 딱 네 시간만 허락되었다. 10시에서 2시 사이를 놓치면 꼼짝없이 해가 뜨는 걸 구경당하다 기세에 눌려 잠드는 방법밖엔 없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게 맞다. 나는 천성이 느긋해서 주변이 어둑어둑해야 그나마 뭘 한다. 끝이라는 인상을 받아야 겨우 일을 시작하고 동시에 능률도 올라가는데, 하루 온종일 해가 커튼을 뚫고 방 안에서 신나게 끓고 있으니 뭘 해도 마음에 차는 수준이 아니었다. 겨울 시험기간보다 배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해가 오래 떠 있으니 배도 자주 고팠다. 쓰라는 뇌는 안 쓰고 위장만 주야장천 써대니 고질병으로 달고 살던 위염도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해야 되는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사방으로 이상한 기싸움을 반복하다가 지쳐 골아떨어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체코에서의 매일은 잔혹했다. 답을 구할 수 없는 수학 문제를 받은 느낌이다. 해석하기 어려운 고대 문자를 만난 기분이다. 이기는 건 이젠 집어치웠고, 졸업 전에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나 찾는 게 목표다. 지금은 오후 4시 35분. 창문에 아직도 쳐져 있는 커튼이 눈에 걸렸다. 용기를 가지고 암막 커튼을 살짝 들춰본다. 눈이 마주쳤다. 아직도 기가 세다. 금세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방을 헤집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태양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또 이기고 있었다.